연중 22주일.

2019. 8. 31. 오후 9:5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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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22주일. 집회 3,17-29; 히브 12,18-24;루카 14,1-14

  예전에는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하게 일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이제는 남에게 보여지는 것을 중시하는 세상이 되면서 뭔가 우리 안에 욕심이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나를 알아주지 않던가, 문자에 대한 답신이 없거나, 내가 올린 글, 영상물에 대해 반응이 없을 때 다가오는 초조, 불안함을 느끼셨을텐데요. 이런 사태에서 깨닫습니다. ‘불필요한 것들에 집착했음을요. 반응에 신경을 쓰다보니 오히려 마음이 허해지고, 괴로우셨을 것입니다. 이제 내 마음에, 내 중심에 무엇이 들어차 있는 지 보셔야지요. 그래야 세상에서 바로 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과연 우린 어떻게 해나가야 할까요?

  오늘 말씀이 그런 것과 맞닿아 있습니다.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 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이제 뭔가 정립을 할 때가 왔습니다. 내가 그동안 해왔던 사랑과, 결국 해야 할 사랑과의 차이에서 오는 간극을 좁힐 때를요. 여태껏 여러분이 해왔던 사랑에 대해서는 굳이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이제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할 지를 볼까 합니다.

  최종 목표는 복음말씀처럼 사는 것입니다. 하지만 당장에 부담스럽다면 이런 연습부터 해봐야 하겠습니다. 부탁을 들어주거나, 원하는 돈을 주고서, 받음을 기대하지 않는다.. 누구에게 뭔가 주고서 그것이 내 품을 떠나면, 이젠 온전히 그 사람 것이기에 어떻게 사용하건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리고 줬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다’  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해주고서 잊어버릴 때, 그제서야 우리가 행한 자선이, 자연스럽게 표출된 것이었음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옳은 일을 했다. 뭔가 베풀었다 는 생각조차 잊고서 행할 때, 비로소 자연스러운 삶이 되는데요. 마치 신부님들이 교우들에게 고해성사를 주고서 그 교우의 잘못을 기억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죠. 그래야 신부님들도 새롭게 살고, 신자들도 새로운 삶을 출발하며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하느님의 말씀을 실습하며 실행하는 최적의 장소입니다. 1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현명한 마음은 격언을 되새긴다. 주의 깊은 귀는 지혜로운 이가 바라는 것이다.” 우린 이미 들어 알고 있습니다. 이미 배운 것에 대한 체험의 시간을 계속해 나갈 때, 하느님이 우리에게 쓰셨던 마음이 어떤 것이었나를 이해해 가겠지요. 그러면서 좁았던 마음도 키워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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