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성모 신심 미사. 루카 2,27-35
우린 결국 다 떠나야 할 사람들입니다. 커가면서 부모의 품을 떠나야 어른이 되고요. 고향을 떠나면서 더 큰 세상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결국 살던 세상을 떠나야 하느님의 품이 어떤 것인지도 알게 되겠지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떠나실 준비가 되어 있으신지요. 하지만 떠난다고 항상 좋은 것이 주어지진 않지요. 사람들이 날 좋아해 주는 것도 아니고요. 반대를 받으며 힘겨울 수도 있습니다. 사태가 이쯤 돌아간다면 여러분은 어떤 방법을 쓰시겠습니까? 물론 남들이 자주 쓰는 방법이 있긴 하지요. 다른 이에게 잘 보이려 살랑대고, 욕 안 먹으려고 애쓰고, 이쁨 받고, 칭찬받으려 노력하고.. 헌데 행복하십니까? 그게 여러분의 본 모습은 아니잖습니까? 아니니까 당연히 힘들지요.
복음에 시메온 예언자가 말합니다. “보십시오. 이 아이는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하며, 또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 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이건 듣는 아기 엄마의 입장에선 악담이죠. 저주입니다. ‘내 아이가 사람들에게 지지를 받지 못한다고?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따질 만 하죠. 하지만 결국 아기 예수는 그런 사람이 되었고, 그렇게 매달려 돌아가십니다.
자기만의 길을 떠난 아이가 부모가 원치 않는 삶을 택한다고 할 때, 이제 여러분도 마음의 결정을 내리셔야 하는데요. 하지만 전 요사이 무섭습니다. 엄마의 모성애가 참 무섭습니다. ‘무슨 짓을 하더라도 아이의 앞길을 막아서는 것들은 뭐든지 불사하겠다. 옳은 방법이건 아니건 관계없이, 어떤 방법도 다 동원하겠다’ 는 자세가 저는 참 무섭습니다. 그것이 아이의 앞길을 열어주는 것입니까? 아니면 막아서는 방해자의 모습일까요? 그야말로 아이가 잘 먹고, 잘 살면서 무탈한 아이가 되길 바라십니까? 아니면 자기만의 앞길을 자신있게 걸어가는 아이가 되길 바라십니까? 사람들의 반대받음이, 시간이 지나며 오히려 그 방법이 나라를 살리고, 사람을 살리는 것인지, 헤아리는 지혜를 가지고 계신지요? 멀리 내다보실 수가 있으신지요? 그것이 없다면 섣부르게 행동하면 안되는데요. 유행만 타면 안되는데요. 성모님의 지혜를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