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0주일. 예레 38,4-10; 히브 12,1-4; 루카 12,49-53
여러분은 무엇을 위해 살아오고 계십니까? 여러 답변이 있을 수 있겠지만 교회의 가르침은 이러합니다. “하느님 아버지의 보다 큰 영광을 위하여” 이 가르침이 와 닿으십니까? 하느님의 정신과 주님의 뜻하심을 먼저 선택하고 드러낼 때, 우리의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고. 당연히 나의 삶도 정돈이 되고, 올바른 방향으로 가면서 결국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말인데요. 이미 여러분은 미사 경문 중에 신부님이 성체와 성혈을 들면서 기도하는 문구를 알고 계십니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이게 무슨 뜻입니까? 먼저 그리스도이신 주님의 삶이 어땠는지 알아야 하는데요. 주님은 자신을 죽였습니다. 자존심, 하고픈 욕망, 당연하다고 여긴 것을 굽히면서 결국 모든 것을 이루셨습니다. 하지만 이런 가르침이 여러분께 와 닿지 않는다면 지금부터 드리는 말씀은 더 와 닿지 않을 것이구요. 나가셔도 됩니다. 나가는 문은 저쪽이니까요. 저는 여러분과 타협하지 않습니다. 저는 참된 말씀만 선포하려 하니까요. 귀에 듣기 좋건 싫건, 전혀 상관하지 않습니다. 감정에 치우치고, 기분을 더 우선시 하는 자세는 진리를 쫓는 사람의 태도가 아니니까요.
1독서의 예레미아 예언자도 꼿꼿했습니다. 오늘 독서의 내용이 그저 저수 동굴에 빠졌다가 나온 얘기만 나오기에 성경을 모르시는 분들은 이해하기 힘드시지만, 실은 예레미아 예언자의 발언 때문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다른 예언자들은 이스라엘 왕국이 바빌론에 의해 침략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거짓예언을 펴지만, 예레미아는 하느님의 뜻은 곧 침략당할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듣기 좋은 소리만 듣고픈 것이 사람이지요. 하지만 진실을 진실이라고 말하고 인정할 때, 서로를 살릴 수 있는데요. 복음도 그렇습니다. “내가 평화를 주러왔다고 생각하느냐?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고 하십니다. 싸움 나는 거, 편이 갈리는 거, 그로인해 분쟁 나는 것을 대다수 사람들이 원치 않는다는 것은 저도 잘 압니다. 하지만 그런 분란이 일어나야 현실 사정을 더 잘 볼 수 있고요. 그럴 때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있는데요. 2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오지요. “죄인들의 적대행위를 견디어내신 분을 생각해보십시오.” 예수님의 영광도 그냥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이들의 반대와 역경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교회가 생긴건데요. 여기서 어려움을 잘 이겨내려면 무엇이 필요할지 살펴봅니다. 첫째, 올바른 것을 볼 줄 알고, 들을 줄 아는 분별력이 있습니까? 여러분의 판단의 근거는 어디서부터 시작됩니까? 그 근거의 기초가 바로 서지 않으면 그때마다 다른 줏대 없는 인간이 되고 맙니다. 저는 여러분이 주님의 시각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야 여러분 스스로 헷갈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둘째, 가진 분별력을 통해 실행할 수 있는 용기가 있습니까? 다들 생각은 어느 정도 할 줄 압니다. 하지만 뒤에서만 궁시렁 거리거나 실천하지 못한다면 그냥 그것으로 끝나고 마는데요. 용기 없는 분별력, 그야말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셋째, 반대를 받으면서 당할 비난과 수모를 견딜만한 힘이 있습니까? 모두가 내 편이 아니지요. 당연히 나하고 생각이 다를 겁니다. 그 이유 중에는 각자가 생각하는 이익, 손해의 정도가 끼어있는 계산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구요. 그것이 우리의 힘을 약하게 만들 것입니다. 우린 계산적인 사람이 아니라, 해야할 것을 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가진 소명의 부르심을 따를 때, 반대를 당하여도, 마치 밟아도 뿌리를 뻗어대는 근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넷째로, 자신이 가진 욕망을 죽이면서 오히려 승리감을 맛본 적이 있었습니까? 교회의 정신 중에 복음 삼덕이 있습니다. 청빈, 정결, 순명이지요. 할 줄 알지만, 할 수 있지만 일부러 하지 않는 태도에서 승리감을 얻을 수 있는데요. 자신의 욕구를 죽이면서 얻는 승리이지요. 이것보다 큰 쾌감은 없는데요. 그런 것을 맛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사랑하는 상도동 본당 교우 여러분
우리는 예전과 달라지려고 여기 모였습니다. 씨도 땅에 묻혀 썩어야 싹이 돋고요. 우리가 먹는 커피도 본연의 모습을 버리고 로스팅 될 때, 풍미가 생깁니다. 우리도 어린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릴 때 가진 생각, 태도, 욕심 등을 버릴 때 참된 어른이 되는데요. 하느님의 더 큰 뜻을 따르며 커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