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6주일.

2019. 7. 20. 오후 1:36:47

글자

연중 16주일. 창세 18,1-10; 콜로 1,24-28. 루카 10,38-42

  예전 자기 아이를 붙잡고 길을 가다가, 험한 일을 하시는 분을 보면 아이에게 나지막하게 이런 말을 하곤 했습니다. 너 공부 못하면 저 사람처럼 된다!..’ 예전에는 그러려니.. 하고 넘길 만도 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지요. 제가 이런 말씀을 꺼내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예전에는 공부를 많이 못할 수 밖에 없는 어려운 시대였지만, 그래도 살아야 했으니 험한 일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빚을 내서라도 대학에 들어가고요. 더 높은 고학력과 많은 스팩을 쌓으려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어렵게 공부를 많이 하고 높은 자리에 올라간 사람들이 저지르는 범죄가, 오히려 보통 사람보다 더 심각한 경우가 많은데요. 그래서 이젠 말이 좀 바뀌어야 할 것 같습니다. 너 아무리 공부 잘해도, 결국 저 사람처럼 될 수도 있다?’

  우리가 공부하는 이유는 단순히 많이 알거나, 좋은 직장을 얻거나,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지요. 실상 공부를 하는 이유는 높은 도덕적 인간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즉 많이 알고,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일수록 가져야 할 것은 책임감입니다. 여태껏 배운 진리의 학문에 있는 도덕적 질서가 무언지를 안다면, 그동안 배운 진리가 얼마나 아름답고, 조화로운지를 알기에, 앞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면 책임감을 통해야만 나도 살고, 남도 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 oblige)’ 라는 말처럼, 사회적 지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 를 가져야 한다는 뜻인데요. 높은 도덕의식을 가진 이가 모범을 보이며 세상을 이끌어야, 서로 다른 계층 간의 대립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요사이는 어떻습니까? 학력은 높지만 배운 만큼 생각하지 않습니다. 높은 자리에 있지만 정작 책임은 피하려 듭니다. 정작 뭔가를 이끌고 공적인 일을 해결해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하려 듭니다. 배운 것은 많지만, 정작 실현이 되지 않는 세상이라면 좋은 것을 기대할 수가 없는데요.

  여기서 믿음의 조상이라 일컫는 아브라함의 자세를 보겠습니다. 그는 요즘 같이 한창 더운 대낮, 천막 어귀에 앉아 있었습니다. 더우니까, 몸도 힘들지요. 그 때 자신에게 다가온 세 사람을 발견합니다. 성경 연구가들은 이들을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이신 주님이라고 해석합니다. 사람의 모습을 갖고 있지만 실상은 하느님이 방문하신 것이지요. 이런 해석이 가능한 것은, 맨 마지막 부분에 이런 말을 합니다. 내년 이 때에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런 말을 하지 않지요. 여기서 주목할 것은 아브라함의 태도입니다. 세 사람에게서 무엇을 발견했던 것인지, 아브라함은 갑자기 지극히 정성된 대접을 올립니다. 과연 세 사람에게서 무엇을 봤을까요? 복음도 그렇습니다. 손님 접대에 바쁜 언니 마르타와 달리, 마리아는 주님 곁에서 열심히 경청하고 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녀는 왜 예수님께 집중하고 있을까요? 2독서에서는 "그 신비가 이제는 하느님의 성도들에게 명백히 드러났습니다" 라고 했지만 누군가는 왜 여전히 보지 못할까요?

  여러분은 쓰윽 지나가는 것들 속에서 참된 것을 발견할 줄 아는 능력이 있으십니까? 이건 배운다고만 얻어지는 것은 아닌데요. 이러한 감각을 갖고, 유지하려면 무엇일 필요할 것 같습니까? 이런 말이 있습니다. 진리는 실로, 진리를 섬기는 이에게만 그 문을 열어주신다 우리가 단순히 가진 머리만으로 사유하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까? 아닙니다. 하느님의 눈은 전문가들의 눈보다 훨씬 더 까다롭습니다. 그래서 철학자 플라톤은 말합니다. 우리의 모든 영혼을 다해서 사유해야 한다 고요. 성경으로 바꿔 부르자면,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는 태도일 것입니다. 그렇게 전 존재를 다해 임할 때, 쉽사리 악덕에 빠지지 않고 온전한 양심을 보존하고 지켜갈 수 있는데요. 그래서 프랑스의 철학자 알퐁소 그라트리 신부도 이렇게 말합니다. “시력은 좋지만 눈이 먼 영혼, 건전하고 똑똑하지만 어리석은 영혼이 있다.” 이른바 헛똑똑이들이지요. 그래서 우린, 평소 배우는 것들에서 집중력을 가지고 탐구해 가야 합니다. 그럴 때, 내가 배우는 것들을 몰두하는 힘을 키워갈 수 있고요. 그러면서 판단력을 키워간다면, 그 판단은 그동안 해왔던 탐구에 대한 열매를 수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도 스쳐 지나가는 사람, 환경, 물건, 생각들이 있습니다. 여기서 제대로 된 것을 잘 잡으시길 바랍니다. 그럴 때, 아브라함, 마리아 못지 않는 열매를 손에 쥘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알렐루야의 응송으로 강론을 마치겠습니다.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간직하여 인내로 열매를 맺는 사람들은 행복하여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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