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5주간 목요일
많은 분들이 ‘책임 맡기’를 두려워 합니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켠에는 높은 자리에 오르고 싶어하는 양면성이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누릴 수 있는 특권 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교회도 그다지 다르지 않습니다. 보통 단체장은 잘 맡으려 하지 않지만 어떤 분은 사목회의 고위직에서 계속 머물려고 합니다. 일단 권위 있는 발언권을 가질 수 있고요. 나중에 임기가 끝나도 원로급들의 정기모임도 참여할 수 있으면서 신부님들이 계속 바뀌어도 뒤에서 후배 사목회에 괜한 압력을 가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 본당에서 이런 것들을 보면서 높은 자리에 앉은 이들이 짊어져야 할 부담감에 대해 보게 됩니다. 그 부담감을 제대로 봐야만 공적인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기 때문인데요.
복음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비록 편하고 가볍다고 하셨지만 분명 멍에와 짐이 없지 않고 존재하고요. 여전히 누군가에게는 피할 만큼 부담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모세처럼 따져 물을 수 있습니다. “제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서 하느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고 말하면.. 제가 그들에게 무엇이라고 대답해야 하겠습니까?” 여기에 하느님은 당신의 이름부터 탈출 계획까지 알려주시지만 여전히 모세는 떨떠름했을 것이고요.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때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전 가끔 교우들과 대화를 하다 이렇게 여쭤봅니다.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요사이 대다수 분들은 이렇데 답합니다. ‘노력해야지요’.. 그런데 이 말이 정답일까요? 예전 분들은 똑같은 질문에 이렇게 답해오셨습니다. ‘그분께 더 맡겨 드려야지요’ 여러분에게 필요한 대답은 노력일까요? 그분께 대한 믿음과 신뢰일까요? 어줍잖은 노력과 애씀은 오히려 실망과 좌절로 이어질 수 있고요. 생각만큼 잘 안되니 우울함과 자기 학대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잘 되어도 하느님이 도와주신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잘나서 그런 줄 알게 됩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라는 말씀이 어떻게 들리십니까? 그분을 신뢰하는 이들은 주님을 믿기에 주님의 관점으로 세상을 봅니다. 주님의 관점은 어느 특정한 사람만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이들을 구하고 향하시는데요. 멍에, 짐이 없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 짐을 지고 당신을 따를 때, 해결책이 열리는데요. 성가 59장은 ‘주께선 나의 피난처, 의지할 곳 주님 뿐, 풍파가 심할 지라도 내게는 평화 있네’ 라는 노래 가사입니다. 여러분은 어디에 의지하십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