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3주일. 1열왕 19,16-21; 갈라 5,1-18; 루카 9,51-62
예전에 어떤 제자가 선생님에게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하느님이 어디에 계시는 지 알려주십시오?’ 그러자 선생님은 이렇게 되물어봅니다. ‘좋다. 그렇다면 하느님이 계시지 않는 곳을 나에게 말해다오. 그럼 대답해주마..’ 여러분도 눈치 채셨습니까? 하느님이 계시지 않는 곳이 어딜까요? 마치 지금도 우리가 숨을 쉬고 있지만, 그 장소가 성당이건, 직장이건, 빌딩 지하실이건 가리지 않고 숨을 쉴 수 있듯이, 주님도 계시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즉,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찾는 정신’ 이 필요한데요. 하지만 우리가 하느님의 얼굴을 본 적이 없다고 여기기에, 현실에서 하느님을 찾지 못하고 헤매고만 있는데요.
오늘 말씀들은 하나로 연결됩니다. 바로 하느님의 부르심과 응답하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1독서는 예언자 엘리야를 통해 장차 예언자가 될 엘리사를 부르는 장면이구요. 복음은 “나를 따라라” 라는 주님의 말씀에 응하고 있고요. 2독서는 그 부르심을 주시는 “성령의 인도에 따라 살아가십시오” 라는 말씀으로 귀결됩니다. 하지만 세례를 받았어도 여전히 하느님에 대해 못미더워하고 신앙적이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들의 유형은 다음과 같습니다. ① 일단 내가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과 별로 관계를 맺어본 기억과 체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② 점점 주변 이웃들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이가 먹어갈수록, 주변 사람들이 나를 이용하고 속이고 있다고 여기면서, 나만 이용당한다는 기억 때문에 별로 신뢰하지 않습니다. ③ 성경에 대한 신뢰가 없습니다. 성경을 그냥 책으로만 여기기에 주님께서 들려주시는 말씀을 따라야 한다거나 실천해야 한다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남들의 이야기나 주변 정보에 더 귀를 기울입니다. ④ 나 자신을 더 믿는 자만심과 오만을 내세웁니다. 그동안 받았던 상처나 부정적인 기억으로, 나 자신이라는 갑옷에 꽉 막혀 사는 삶을 택합니다. 이런 경우에 해당되는 분들은 이미 사람이 하느님을 닮아 산다. 는 ‘하느님의 모상’ 이라는 의미가 연결되지 않을 것입니다. 자~ 현실과 문제가 이러하다면 이제 어떤 처방이 필요할까요?
우리가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느님과 뜻’과 ‘내 뜻’ 은 이분법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하느님 생각 따로, 나 따로가 아닙니다. 그래서 요사이 영성가들도 현대적인 도구를 씁니다. 그 도구는 심리 검사입니다. 솔직히 요사이 분위기는 이러합니다. 이런 류의 검사나 상담을 꼭 받아야 할 분들은 오히려 받지 않고, 상태가 가볍거나 덜 한 분들이 오히려 받으러 오시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는 이 방법을 절대화 하진 않습니다. 이건 그냥 나의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는 데이터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나’ 라는 사람의 한 단면을 볼 수는 있겠지만, 다양한 면을 종합하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도움은 얻을 수 있지요. 제가 왜 심리적인 이야기를 꺼냈는가 하면, 여러분의 지금 상태가 어떤 지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나’ 라는 사람을 아시는 주님께서, 나를 통해 당신의 뜻을 이루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하겠지요. 즉, 하느님은 내가 가지고 있는 몇 %의 가능성을 가지고 부르신다는 사실입니다. 아예 없는 것을 일부러 만드시는 분이 아니라, 본인도 몰랐던 것을 찾아 이끌어내시는 분인데요.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린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그의 충실하고 묵묵함을 아시기에, 그를 택하여 후손이 이어지게 하셨구요. 이집트를 탈출시킨 모세는, 그가 가지고 있던 군인 스타일의 진취력과 리더쉽을 가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었구요. 첫 순교자인 스테파노는 가지고 있던 단호한 성격과 믿음을 통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순교로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즉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그 가능성을 가지고 부르시는데요.
사랑하는 상도동 본당 교우 여러분
하느님은 이처럼 모든 것 안에 계시면서, 모든 것을 아시고, 나도 모르는 것을 알고 계시기에, 우린 내 생각에만 사로잡히고 가로막혀 살아서는 안되겠습니다. 당신은 우리를 통하여 모든 것을 초월하여 이루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렇기에 더 깊은 신뢰와 믿음을 지니고 당신께서 나를 어디로 이끄시는 지, 그리고 그 부름을 기꺼이 따를 수 있는 용기를 달라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