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4주간 금요일
우린 늘 불안해합니다. 현재를 살고있으면서 미래는 막막하게 보이고요. 현실은 잘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대다수가 빠른 결론을 내리려 합니다. 빠른 결론이란 이런 것이지요. 쉽게 만족을 얻을 수 있고요. 얼른 해소되는 듯한 느낌이 드는 방법입니다. 마치 불황이 다가오면 더 짙은 화장을한다거나 자극적인 음식을 먹고, 당장에 도드라지는 외면에 보이는 것들에 치중을 하듯이 당장에 얻을 수 만족을 추구하려 듭니다. 당연히 긴 계획을 세운다거나 후일을 도모한다거나 할 겨를이 없어보입니다. 자~ 지금의 세상이 그러합니다. 그러면 믿는다는 우린 어떤 선택을 해야할까요? 앞서의 방법들은 믿지 않는 이들도 하는 방법인데요.
그 당시 성경의 시대도 불안한 시기였습니다. 예수님의 승천 후, 마치 구심점을 잃은 사람처럼 혼란함이 엿보입니다. 이 때 바오로가 “하느님을 경외하는 여러분, 이 구원의 말씀이 바로 우리에게 파견되셨습니다.” 라면서 예수님의 구원업적을 쭉 나열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여러분에게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 라고 말합니다. 가끔 막막한 미래를 잘 가려면 과거의 역사에서 배울 것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들도 우리처럼 불안했고요. 방황했고요. 오판을 저질렀구요. 낙담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 주님과 함께 한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복음에도 마음이 산란한 제자들에게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같이 있게 하겠다.” 는 구체적인 말씀과 동시에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하십니다. 헌데 어려분은 어떻게 일을 해결해 가십니까?
어쩌면 우린 기도한답시고 나 혼자서만 애만 썼는지도 모릅니다. 그분에게 손을 내밀지도 않고, 그저 적당히 매달리는 간절함이 별로인 기도를 하면서 결국 결론을 낼 때는 본인의 생각으로 귀결시켜버리는 모습이 많았기에 우린 기도하면서도 늘 불안해 하고 있는데요. 예전 주님과의 좋았던 기억과 체험을 떠올리며 당신의 말씀이 지금 현실에서 어떻게 열려가고 있는 지 봐야 하겠습니다. 거기에 진정한 답이 있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