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3주간 수요일
‘하느님을 믿으면 모든 것이 다 잘 될까요?’ 갑자기 아침부터 신부 입에서 이런 소리가 나온다니 놀라실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믿는다고 다 잘 풀리지 않는 것이 현실이기도 합니다. 간혹 주위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10여년의 청춘의 삶을 교회에 바쳤지만 서품과 종신서원이 보류되거나 거부되는 경우도 있고요. 이것은 일반 재속회원들 사이에도 벌어져서 ‘그동안 시간과 노력을 다 바쳤는데 하느님이 이러실 수 있냐?’ 고 울분을 터뜨리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들으신 말씀도 그러합니다. 스테파노의 순교 후, 예루살렘 교회는 박해를 받으면서 많은 이들이 여러 지방으로 흩어집니다. 그러면서도 누군가는 주님의 말씀을 전하고 불구자가 낫는 기적도 체험하지만, 현실은 감옥에 갇히는 등 힘겹습니다. 복음의 말씀도 그러합니다.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그분께서 주시는 사람을 하나도 잃지않고 마지막에 다시 살리는 것이다.”라고 하시지만 이 복음은 평상시 장례미사에 쓰입니다. 사람이 죽은 마당에 슬픔에 가려 희망이 보이지도 않습니다. 하느님을 믿었는데 오히려 더 큰 시련을 만나는 것을 경험하며 혹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시련, 고통은 힘겹지만 한편으로 평소 우리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목도케 해줍니다. 먼저 잘 믿는 사람의 길을 알려드립니다. ‘내가 내 안의 것을 가지고 하느님을 만나고, 내 안에 하느님의 영이 스며들면서 내가 변화되는 것’ 입니다. 하지만 잘못 믿는 경우는 이러합니다. 자신의 본 모습을 인정하지 않고, 일단 종교적 이념에 숨어듭니다. 그 안에 숨는 사람은 맹목적으로 믿게 되고요. 잘 알지도 못하는 그 이념을 내세우며 자신의 열등한 모습을 보상받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내가 만든 허상일 뿐이고요. 열등감이 투사된 껍데기인데요. 왜냐하면 신앙과 하느님이 주신 이성사이의 연결이 막혀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앙을 가져도 뭔가 허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는데요.
저는 여러분께 무조건 믿으라고 말씀드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막연한 평화를 얻도록 기도하라고도 말씀드리지 않습니다. 왜냐면 그런 믿음과 평화는 값싼 동정일 뿐이고요. 오래 지속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야할 신앙은 힘든 현실이라는 가시밭길에서 진행되고요. 원래 자신의 모습을 거부하지 않고, 그것을 짊어지고 하느님께 나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잠시의 실패와 힘겨움이 우리를 실망시킬지언정, 죽일 수는 없습니다. 우린 매일 매일을 걸어가야 합니다. 그러면서 만나는 체험과 깨달음을 챙겨가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예수 그리스도가 이기신 삶에 동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