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간 수요일
살면서 느끼는 어려운 점 중 하나는 ‘인간 관계’입니다. 어쩌면 제일 큰 부분이라 하겠는데요. 이로 인해 기쁘고도 즐겁기도 하지만, 상처받기도 하고요. 기대와 배반감도 함께 느끼는 여러 문제를 만납니다. 물론 당장에 그런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하는 행동이 ‘자기를 드러내지 않는’ 것입니다. 당장에는 위험에 노출되지 않겠지만 계속 그러면 내가 누구인지, 상대는 어떤 마음을 품는 지 모르게 되고요. 내가 생각한 상상 속에 사는 문제가 발생되고요. 나중에는 내가 여기서 이겨 나갈 수 있는 방안도 모르게 되는데요. 즉 우린 위험에 직면하면서 내가 이길 수 있고 버틸 수 있는 방책을 찾아야만 하는데요.
오늘 복음의 상황은 굉장히 묘한 분위기입니다. 만찬의 기쁨과 더불어 유다가 배반을 할 것이라는 것을 아시는 분위기에서 벌어지는 제자들의 불안함, 예수님 당신의 앞으로 어찌 펼쳐질 지가 흥미롭습니다. 이 묘한 긴장감에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애매합니다. 이럴 때 독서는 ‘주님의 종 세 번 째 부분’입니다. “나는 매질하는 자들에게 내 등을, 수염을 잡아뜯는 자들에게 내 뺨을 내맡겼고 오욕과 수모를 받지 않으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상황은 분명 불리하게 돌아가는 듯 여겨지지만 아직 끝장난 것은 아닙니다. 뭔가 변화가 있을 여지도 있습니다. 예수님 입장에서는 유다에게 기회를 주고 있습니다. ‘네 맘을 알고 있기에 이제 어떻게 할래? 정말 그렇게 할 거야?’ 그러면서 한 번 해보고 싶은 데로 해보라는 대범함도 보입니다. 하지만 이 밑에는 엄청난 믿음의 신뢰가 깔려 있습니다. “주 하느님께서 도와주시니, 나는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는데 나를 단죄하는 자 누구인가?” 결국 ‘네가 하려는 것으로 인해 네가 어떤 사람인지 드러나게 할 것이며, 내가 여기에 부딪힌다 하여도 나는 깨져 죽지 않으리라’ 라는 것이 깔려 있습니다. 엄청난 믿음이지요.
물론 가끔씩 현실 속에서 다가오는 위협은 두렵습니다. 옛 말에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 는 말처럼 호랑이가 어떤 놈인지부터 잘 관찰하고 파악하면서 나 자신을 바로 안다면, 나는 나 자신을 포기하거나 놓지 않고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데요. 그러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