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4주간 목요일. 탈출 32,7-14; 요한 5,31-47
예전이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떠올려질 질문이 있습니다. 역사 이래로 계속 되어온 질문, “과연 신은 있는가?” 라는 질문입니다. 여러분도 이미 경험하시지만, 세상은 매우 불공평하게 돌아가는 듯 여겨지고요. 하느님의 응답도 잘 들리지 않습니다. 그분의 음성을 기다려보지만 내가 바란 대답이 아닐 때가 많기에 실망도 많습니다. 그리고 신자들 중에도 이미 성직자, 수도자 중에서도 주님을 등진 사람들이 있어왔다는 사실을 바라본다면 ‘과연 하느님이 있는가?’ 에 대한 의문은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요인인데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이런 혼란을 어떻게 견뎌나가십니까? 무슨 확신이 들어 여기 앉아 계신 것입니까?
오늘 독서에도 우상숭배를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자기들을 위하여 수송아지상을 부어 만들어 놓고서는 그것에 절하고 제사 지내며, 이스라엘아 이 분이 너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너의 신이시다” 라고 말하고요 하느님은 “참으로 목이 뻣뻣한 백성이다” 라는 말씀도 하십니다. 복음도 “나는 너희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안다...너희는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실상 신앙과 불신앙에 관한 문제는 계속 있어왔고요. 사람들 모두에게서 벌어지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많은 이들이 빠른 대답, 간결한 모범답안을 선택하길 강요받지만 그건 옳은 방법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느님을 다 알 수도 없고요. 그 분을 소유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과연 당신은 누구이십니까?’ 라고 묻는 자세입니다. ‘부활, 구원은 내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라는 질문을 앞에 놓고 가만히 들여다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물론 당장에 금방 답을 내신다면, 그건 그냥 누가 가르쳐준 답안이겠고요. 우리가 답하여야 할 사항은 ‘지금의 나’ 를 통하여 나와야 하기에 시간이 필요합니다. 당연히 예전의 대답과 다를 수 있고요. 내 마음도 항상 같지만도 않습니다. 당장에 혼란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모세가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서, 예수님도 신성을 갖고 계셨지만 인성 또한 갖고 계셨기에, 이 어려운 질문에 천천히 응답하시며 그 길을 가셨다는 점입니다. 전 여러분이 당장에 어떤 대답을 하라고 강요하진 않습니다. 얼른 대답이 나올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이 질문들과 마주 대하며, 씨름하면서 계속 붙잡고 가는 사람은 분명 답을 할 날이 올 것입니다. 그저 교리 지식이나 남이 말한 하느님이 아닌, 자신이 체험한 하느님이기 때문입니다. 이 질문을 마주 대할 때마다 당신은 우릴 조금씩 열어주실 것이고요. 이 끈덕진 시간을 견디며 대답해간다면 여러분은 점차 하느님과 가까워질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