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성모신심 미사 (요한 19,25-27)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레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 예수님 곁에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봉성체를 하러 가가호로 방문을 하다보면 방에 어르신들이 tv를 켜놓고 계신 것을 많이 봅니다. 그렇다고 tv를 뚜렷하게 시청하기 위해 켜놓으신 것이 아니라, 집에 사람이 없기에 무료하기 때문에, 너무 심심하고 조용하기에 그냥 켜놓으신 것이지요. 인간적으로 충분히 공감합니다. 사람이 잘 찾지 않는 방에 뭔가 시끌벅적한 것이라도 있어야 마음의 안정도 드니까요. 하지만 한편으로 보자면 가만히 있는 것에 대한 불안함, 조용한 침묵에 대한 부담감과 거부감과 더불어 두려운 마음도 들기에 그렇게 하실텐데요.
이제 다음 주부터 사순절이 시작됩니다. 주님의 고통과 수난, 그리고 부활, 승천이 이어지는 초입(初入)입니다. 그러면서 성모님이 보입니다. 예수님은 젊은 나이에 그 많은 일을 하시고 하늘로 오르시어 당신 길로 가셨지만 그동안 예수님과 함께 했던 가족들은 얼마나 남은 날을 외롭게 보내셨을까? 하고요. ‘있었던 사람이 더 이상 내 곁에 없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그 현실을 견디기 쉽지 않았을 것이고요. 마치 출가시킨 부모님들은 그 심정이 어떨지 더 잘 아실 것입니다. 아이가 다 커서 결혼하거나 홀로 따로 사는 것을 인정은 하지만, 막상 없을 때 드는 적적함, 연락도 오지 않을 때 드는, 인간적인 외로움을 어떻게든 안고 살면서 견뎌야 하는데요. 이럴 때 성경에는 다 나오지 않지만 노년의 성모님을 상상해봅니다.‘성모님이니까 외로움을 타지 않으셨을 것이라고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자식과 생이별을 했는데 왜 그립지 않겠습니까? 함께 했던 수많은 교감의 시간이 있었는데 왜 사무치지 않겠습니까?
여기 계신 교우분들도 비슷합니다. 말 못할 여러 사연과 상황속에서 이별의 아픔을 겪고 계신 분들, 어디에 사는지 알고는 있지만, 차마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는 여러 어려움을 갖고 계신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희망이 있습니다. 가만히 있는 가운데에서 듣는 것입니다. 주님이 십자가 상에서 처절한 시간을 겪고 계실 때에도 이를 바라보는 어머니를 위로하고자 말을 건네신 것처럼 잘 느껴지지 않을 때라도 듣고 응답하는 삶은, 비록 외로이 고독 가운데 있더라도 우릴 힘들게 만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깊어질 수 있고요. 그 때는 몰랐던 것을 이해하는 차원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사실 세상은 모를 일 투성이입니다. 가까운 이들이 행한 행동도 밑에 깔려있는 사연을 모른다면 오해하기 쉽습니다. 사람의 일도 그럴진대 하느님의 일이야 어찌 그렇지 않겠습니까? 그러기에 더 깊이 듣는 자세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