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공현 대축일 후 금요일.

2019. 1. 11. 오후 1:5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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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공현 후 금요일. 1요한 3,7-10; 요한 1,35-42

  우린 왜 여기에 모여 와 있습니까? 사람은 여태껏 계속 무언가를 해왔습니다. 남들이 보기에 그 모습이 이상하게 보일 지라도 그래왔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살고 싶어서입니다. 이른바 생존본능이라 하겠습니다. 우리가 일을 하고, 공부를 하고, 기도를 하는 이유가 그것이지요. 이를 통해 얻고픈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라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소명을 붙들고, 모세가 사람을 이집트에서 탈출시키고, 예언자가 예언을 선포하고, 예수님의 행적에 사람들이 따랐던 이유가 그것을 말해줍니다.

  오늘 복음에 나병 걸린 사람이 다가옵니다. 그러면서 겸손되이 간절한 청원을 올립니다.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들은 낫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간절하게 매달립니다. 그리고 그들의 애절함을 아신 주님은 치유해주시면서 한편으로 그들의 앞날을 걱정하시며 당부를 하십니다.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령한대로 네가 깨끗해진 것에 대한 예물을 바쳐,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 예수님은 유랑설교가셨기에 제도적으로 아직은 그들의 보증을 서 줄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이 환자였다는 사실만 기억하기에 남들에게 몸을 보이고, 예물을 바치면서 공인(公認)’ 받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린 가지고 있는 신앙을 확인하고 싶고요. 확인받고 싶고요. 증명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으니까요. ‘영원한 생명이란 약속도 지금 보기에는 너무 먼 미래 같게 여겨지기에 당장 무언가를 만나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방법이 없지만은 않습니다. 우리 곁에 있는 이들에게 무언가를 하면 됩니다.

 독서에 아드님을 모시고 있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다.” 하십니다. 생명을 지닌 이들은 내 안에서 뭔가 꿈틀거리는 것이 있음을 압니다. 일단 숨을 쉬고 있고요. 행동을 하면서 실천을 하고 있음을 내가 느낄 수 있으며 그것이 증거가 됩니다. 여기에 요한 사도는 자신을 이렇게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쓰는 까닭은 여러분이 영원한 생명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요한 사도는 자신 안에서 역동하는 생명의 움직임을 알고 있었고요. 이것을 통해 남들을 살릴 수 있음을 확신하였기에 우리가 보는 이런 편지글을 썼고요. 개인적으로는 쓴 그 글이, 공인을 받아 성경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오를 수 있는 영예를 안았고요. 결국 그 말씀을 통해 모든 이가참됨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되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가진 것을 잘 살피면서 추스릴 때, 확신 속에서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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