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32주간 목요일.

2018. 11. 14. 오후 11: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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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32주간 목요일. 필레 1,7-20; 루카 17,20-25

  여러분은 이 신앙을 통해 무엇을 보고 싶으십니까? 어떤 이는 가족의 행복이요, 어떤 이는오늘 수능시험처럼 자신이 바라는 바를 이뤄달라고 합니다만, 그러한 것은 정말 짧은 순간일 뿐입니다. 마치 찰나의 순간처럼 지나갑니다. 물론 그런 것이 사람을 만족시켜주긴 합니다만, 그런 순간적인 것에만 우리의 인생을 걸려고 한다면, 과연 나머지 인생은 또 어찌 사시렵니까?

  오늘 바오로의 모습은 인생의 마지막에 놓여있습니다. “나 바오로는 늙은이인데다가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님 때문에 수인까지 된 몸입니다.” 이제 그에게 남겨진 희망은 무엇이었을까요? 우리도 자신의 마지막을 한 번 들여다보시기 바랍니다. 과연 무엇으로 가득한 나날일까요? 그 때쯤 되면 상황은 이럴 것입니다. 가진 돈도 떨어져가고요. 늙어버린 나에게 가족도 예전같지 않게 대접할 것이고요. 기력도 떨어져 눈도 잘 안보이고, 잘 들리지도 않고, 밖에 다니기도 쉽지 않습니다. 이럴 때 어떤 행복을 바라십니까? 복음에서는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어떤 분은 이런 말씀에 대단히 실망합니다. 뭔가 구체적이지 않고 추상적이라고요. 만약 여러분도 그렇게 느끼셨다면, 이건 여러분의 오해입니다. 하느님이 바라시는 것은 그런 정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10월 한 달간 로마에서는 세계주교대의원회의, 이른바 세계주교 시노드가 있었습니다. 이번 주제는 젊은이들에 관한 주제였습니다. 이 회의 이후, 돌아오셔서 전국에 있는 청년대표자들과 만나시면서 정순택 주교님은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교회는 많은 분들이 원하는 것을 해결해주는 곳이 아니라, 가치관을 바로 세워나가도록 함께하는 동반자 역할을 하는 곳 이라고요. 그 동반자는 늘 우리와 함께 계셨습니다. 이미 예전부터, 그리고 지금, 앞으로도 말이지요. 그렇다면 우리가 진정 만나야 할 하느님의 나라란, 비록 당장에는 어려운 현실처럼 보여지더라도, 그것이 우릴 죽이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현실의 고통도 현명하고 지혜롭게 넘길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알렐루야에 이런 말씀이 나왔습니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으리라 당신과 함께 열매를 맺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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