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이사 2,1-5;로마 10,9-18; 마태 28,16-20
오늘 들으신 말씀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미 들은 주님의 말씀을 받들어서 세상을 향해 복음을 전하라’ 는 내용으로 압축될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 문제에 관해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꺼린다는 점입니다. 이런 예를 들겠습니다. ‘가두선교, 직장이나 학교에서 동료 직원이나 친구에게 성경을 읽자고 권하기’ 어떻습니까? 해볼 만한 것인가요? 아니면 불편하십니까? 신자끼리도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종교는 자유이지, 억지로 권하는 것이 아니다’ 그 말씀이 맞다면, 방금 들으신 독서나 복음에서는 왜 이런 말을 하고 있지요? 그렇게 하라고 권하고 있잖습니까? 여기서 우리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이미 맛을 보셨습니다. 이 맛을 풀어서 설명해보겠습니다. ‘성당에 오면 마음이 편안하다. 고요한 분위기에서 명상에 빠질 수 있다. 단체 활동을 하면서 뭔가를 배울 수 있고, 평상시 건조한 삶에서 벗어나 사는 맛을 느낀다. 비슷한 또래들과 나누며 건전한 이성교제도 가능하다.’ 물론 봉사를 하시는 분도 여기에 해당됩니다. 나의 만족을 채울 수 있다는 것이지요. 개인적인 만족과 동시에 다른 사람들도 나를 좋은 시각으로 바라 봅니다. 어떻습니까? 하느님이 말씀하신 좋은 의도가 담겨있나요? 앞서 언급한 내용은 1+1(원플러스 원)처럼 하느님을 믿으면 얻을 수 있는 부가서비스에 해당됩니다. 헌데 이 부가서비스가 전부인 양, 대단한 것처럼 여기는 분들이 있습니다. 제가 일부러 지금까지 신앙적인 얘긴 하나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일부러요. 즉 신앙을 가지면 얻는 맛이 분명 있습니다. 분명 여러분은 이른바 좋은 것을 맛보셨습니다. 이 좋은 것, 그게 비록 신앙과 동떨어진 세속적이라 할지라도, 남에게 권하면 왜 안됩니까? 이 좋은 것, 우리만 독식할껍니까? 제가 일부러 이런 것만 고른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사람은 원래 인센티브에 의해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와 다르게 어른이 되면 판단의 조건이 바뀌곤 합니다. 그 판단의 조건이란, ‘내게 무슨 도움이 되는데? 어떤 이익이 주어지는데?’ 이죠. 이른바 교회가 신자들에게 세속적인 맛도 느끼게 해주는데, 하물며 더 귀하고 더 큰 영적인 이익을 외면하겠습니까? 하느님께서 본래 신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거룩한 열매의 본질을 망각하시겠느냐? 는 말입니다.
오늘 들으신 말씀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1독서는 이러지요. “세월이 흐른 뒤에 이러한 일이 이루어지리라. 자, 주님의 산으로 올라가자, 야곱의 하느님 집으로! 그러면 그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주님을 통해서 전쟁의 도구였던 칼과 창이, 농기구인 보습과 낫으로 변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복음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상황은 주님이 부활하신 후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너희 제자들이 예수님과 그동안 함께 지냈으니, 그 체험을 만방에 알리고, 뒤에는 내가 있으니, 성령을 통해 도와주겠다는 말씀이지요. 2독서는 말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나는 묻습니다. 그들이 들은 적이 없다는 것입니까? 물론 들었습니다.” 당신으로 인하여 내 삶이 좋은 것으로 가득 찼던 적이 있는데, 그것이 없었던 것처럼 살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지요. 자~ 이미 여러분은 하느님을 통해 좋은 것을 받으셨습니다. 그게 거룩하게 신앙적이건, 재미있는 세속적이건 말이지요. 그동안 느꼈던 이 좋은 맛을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독식하시렵니까? 아니면 남에게도 권하시렵니까?
사랑하는 상도동 본당 교우 여러분
사실 사람은 변화될 이유가 없으면 움직이지 않습니다. 세상이 변했더라도 내가 그동안 별 탈 없이 살아왔다면, 그게 아무리 하느님 말씀이더라도 움직이지 않는 게 사람입니다. 마치 내가 심각하게 아프지 않으면 병원에 안 가듯이요. 하지만 이런 것은 있습니다. ‘좋은 것은 나눌 때, 풍요로워진다’ 는 점입니다. 저도 하기 싫은 것은 강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아셨으면 합니다. 나누면서 뭔가 따뜻해져봤던 체험이 있으셨다면 여러분은 아직 희망이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