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6주간 수요일

2018. 10. 3. 오전 6:2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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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26주간 수요일. 9,1-16; 루카 9,52-62

  오늘 말씀을 들어보면 이런 느낌이 듭니다. 알아요. 아는데.. 그게 참 쉽지 않아요..’ 욥을 위로하러 온 친구들이 충고랍시고 한마디씩 합니다. 전능하신 분께서 옳지 않는 일을 하시겠는가?” 이에 대해 욥은 답합니다. 물론 나도 그런 줄은 알고있네. 사람이 하느님 앞에서 어찌 의롭다 하겠는가?” 비록 말은 그리하였지만 한편으로 개운하게 느끼진 못했을 겁니다. 복음도 그렇습니다.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라고 말하였지만 주님은 아버지의 장례나 가족들에게 할 작별인사도 막으시는 모습에 인간적으로 못내 서운할 수 있습니다. 마치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심하지 않나?’ 하는 느낌이지요.

  여기서 우린 벽에 부딪히게 됩니다. 내 예상과 다르게 움직이시는 주님의 모습이 못내 아쉽고 불만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을 내게 왜 시키시는 지, 부담만 가득해 피하고 싶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이미 아십니다. 비록 앞일이 어떨지 모르지만, 부담이 들긴 하였지만 그렇게 지나보며 결국 무엇을 얻으셨는지를요. 저는 간혹 교우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나의 결혼생활이 결국 이렇게 될 줄 미리 알았더라면 이 결혼을 하셨겠습니까?’ 이제부터 별별 반응이 다 나옵니다. 여기서 전 이런 말씀을 드려봅니다. ‘비록 그땐 어렸었고, 뭔지도 몰랐지만, 좀 지나보며 실패와 성공을 하다보니 나의 역사가 만들어졌고, 거기서 태어난 나의 2세들이 자라남을 보면서 하느님의 섭리와 돌보심이 어떤 것인지 좀 알게 되시지 않았습니까?’ 라고요. 욥의 친구들은 말로만 하는, 위로 같지 않는 위로를 통해 그럴 듯한 말로 욥을 설득시키려 했기에 별로 와 닿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나중에 알았을 것입니다. 욥이나 주님의 제자인 사도들이나 그리고 몇 십년 신앙생활을 한 우리도요. 이제 조금이나마 알아듣습니다. 그 당시는 몰랐었지만 그것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비록 그 때는 부담으로 다가왔지만 그것을 떠안고, 껴안았기에 오히려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저에게 그 시간은 감사요, 은총의 시간이었음을요. 내 생각대로 흐르지 않았기에 오히려 다행이었음을요.’

  흘러온 시간 속에서 그분의 것을 받아들이며 나를 어떻게 성장시켜주셨는 지를 봐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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