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2주일미사. 신명기 4,1-8;야고보 1,17-27; 마르코 7,1-23
여러분이 잘 아시는 영화중에 ‘쇼생크 탈출’ 이란 영화가 있습니다. 팀 로빈스와 모건 프리만이 나왔던 이 영화는, 감옥에서 벌어지는 풍경이 나옵니다. 거기서 주인공은 아니지만 50년간 복역하며, 감옥 도서관의 사서로 있던 브룩스란 할아버지가 있습니다. 이젠 워낙 나이가 많아졌기에 보호관찰대상이 되면서 가석방 판결을 받자, 그는 좋아하기보다는 오히려 칼부림을 하며 동료를 찌르려 합니다. “난 이 길 밖에 없어.. 난 여기 있고 싶어” 결국 그 할아버지는 절차대로 출소를 하고요. 동네 수퍼마켓에서 일을 합니다만, 누릴 수 있었던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숙소에서 ‘브룩스 여기 왔었다.’ 라는 글을 새기고 목을 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렇게도 그리던 자유가 펼쳐졌는데 말입니다. 그 사연을 전해들은 동료죄수인 모건 프리먼은 말합니다. ‘감옥생활이란 거 말야? 처음에는 싫지만.. 차츰 길들여지지.. 그리고 세월이 지나면 벗어날 수가 없어. 그게 길들여지는 거야.’ 그 소리를 들은 동료들은 저마다 ‘나는 그렇게는 안 살겠다.’ 는 말을 합니다만 여러분은 어떠신지요? 여러분의 삶은 진정 자유롭습니까? 아니면 차츰 길들여지고 있습니까?
50년간 살았던 브룩스도 감옥에서 길들여졌는데,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에서 지냈던 기간은 430년이었습니다. 아무리 이집트인들의 횡포가 극에 달해도 430년의 시간이란, 이미 저항하는 시간이 아닌, 포기하고, 받아들이고, 길들여지는 시간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모세는 1독서에서 다시 새로운 삶을 살고자 이런 말을 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내리는 주 너희 하느님의 명령을 지켜야 한다. 너희는 그것들을 잘 지키고 실천하여라. 그러면 이 위대한 민족은 정말 지혜롭고 슬기로운 백성이구나 말할 것이다.”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진정한 자유일까요? 아니면 또 다른 속박일까요? 대다수가 자유를 누리기 원한다면서, 실제로는 그 자유를 누리기 위해 필요한 순서가 어떤 것인지 모를 때가 많아 보입니다. 오늘 복음에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를 꾸짖으며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이사야가 너희 위선자들을 두고 옳게 예언하였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있다.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 열심했던 율법학자들이 꾸지람을 들은 이유는, 자신들이 만든 현 체제를 유지하기에만 바빴기 때문인데요. 이 백성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기보다, 자신들이 누리는 지금의 안락함만을 우선시했기 때문입니다. 2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그 말씀에는 여러분을 구원할 힘이 있습니다.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말씀을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그러면 세상에 살면서도, 세상에 길들여지지 않고 자유롭게 사는 방법을 알려드릴까요?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말합니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자기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존재한다.’ 예를 들겠습니다. 우리의 육체는 각 기관이 나름의 기능과 목적을 가집니다. 심장은 펌프질을 하며 피를 돌게 하고요. 폐는 이산화탄소를 산소로 바꿔줍니다. 위장은 음식을 소화하고요. 눈은 앞을 보게 합니다. 이런 기관들이 움직이며 최종 목적인, 사람이 사람다운 삶을 살도록 합니다. 하지만 이런 기관들이 편안함을 원한다면서 자기 일을 하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발생됩니까? 당장 숨이 끊어지거나, 목에 호스를 끼고 살거나, 대소변을 못 가리거나, 남의 도움이 없으면 한발자국도 못 움직일 것입니다. 즉 자신의 의무를 다할 때, 자기가 사는 목적을 실현하며 선함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 선함은 당연히 수고로움이 동반됩니다. 하기 싫어도 해야하지요. 하지만 그로인해 행복을 만나게 해주고, 결국 자유로움이 뭔지 압니다. 하지만 악함은 이렇지요. 처음엔 아무 것도 안하기에 만족을 줍니다. 하지만 그로인해 누군가에게 폐를 끼치거나 아무 것도 안하기에 생활이 나아지지 않는 불행을 만나고요. 결국 그것이 갇힌 노예의 삶으로 가는데요. 결국 이런 갈림길에 봉착합니다. 하느님의 법을 준수하면서 자유로움을 누릴 것인가? 편안하기를 바라면서 결국 노예가 되길 바랄 것인가?
사랑하는 상도동 본당 교우 여러분.
우리는 참 약한 사람들입니다. 감각적으로 만족하는 수준만을 원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우리 자신을 길들이게 만들고, 앞을 보지 못하게 만들 수도 있는데요. 여러분은 본인이 만든 감옥에 자신이 갇히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여러분이 들으신 말씀에 근거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