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0주간 목요일. 에제 36,23-28; 마태 22,1-14
예전 우리가 처음 교리를 배울 때 천주교의 4대 교리란게 있었음을 기억하실 겁니다.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천주존재, 성부 성자 성령이 하나이시라는 삼위일체, 하느님이 사람을 구하시고자 내려오셨다는 강생구속,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중에 선한 사람은 상을 받고 악한 이는 벌을 받는다는 상선벌악인데요. 오늘은 마지막에 언급한 상선벌악 부분에 대해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많은 이들이 하느님을 떠올리면서 자기 방식대로 하느님을 이해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하느님은 사랑이시기에 나중에 죽더라도 엄한 심판은 없고 모두를 살리실꺼야.’ 라거나, ‘비록 우리 가족은 열심히 믿지 않지만 그래도 내가 교회를 열심히 다니기 때문에 나의 정성을 보셔서 다 구원해주실 거야’ 하는 근거없는 나름의 상상과 기대감을 갖는데요. 여러분도 그러십니까?
오늘 말씀들에서 진정한 것을 만날 수 있습니다. “나는 너희 안에 내 영을 넣어주어 너희가 나의 규정들을 따르고 나의 법규들을 준수하여 지키게 하겠다. 그리하여 너희는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살게 될 것이다.” 당신이 가르쳐주신 규정을 지키면서 하느님의 영을 알게 된 이들은 당신과 함께 사는 영광을 얻을 수 있다는 건데요. 복음도 비슷한 내용입니다. “사실 부르심을 받는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 앞서 혼인잔치의 비유처럼 예정된 잔치를 베풀지만 사람들은 자기 나름의 이유를 대면서 초대에 응하지 않았고요. 응한 사람도 준비되지 않은 복장 탓에 쫓겨나는데요. 혹시나 이런 이야기를 들으시면서 불편하실 수도 있습니다. ‘너무 한 하느님, 매정한 하느님’ 하면서요. 하지만 요새 우린 이런 경향이 짙어졌습니다. 이른바 ‘내로남불’.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처럼 자기에게는 너무 관대하다 못해서 분별력도 없어 보이는 것 말입니다.
성녀 아빌라의 대 데레사가 말했습니다. ‘우리가 이승에 살고 있는 한, 늘 자신을 믿지 말고 자기를 경계해야 합니다.’ 즉 이 말은 애착을 끊고 살 때에야 비로소 하느님께 다가갈 수 있다는 말인데요. 그러기에 가지고 있던 자기 생각에 갇히지 말아야 합니다. 그 생각이 나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으니까요. 나의 것을 비우고 당신의 것을 채워나가야 하겠습니다. 그게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이고, 그래야 나도 살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