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5주간 화요일.

2018. 7. 17. 오후 1:3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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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15주간 화요일. 이사 7,1-9; 마태 11,20-24

  종교가 없던 이들이 이곳에 들어와서 잘 적응하면서 사는가싶지만 꼭 그렇지 못한 이유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처음 세례를 받을 때, 성인들의 이름과 축일을 구할 때부터 문제가 생깁니다. 원래 축일은 성인의 죽은 날짜이고요. 그들이 신앙을 증거한 날입니다. 하지만 막 세례를 받는 이들이 세례명을 구할 때 하는 행동이란 것이 내 생일날짜와 맞는 성인을 구하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기억하기 쉽다는 이유를 듭니다만, 문제는 내 기준에 맞춰서 그 성인을 따온다는 개념발상이 오히려 열렬한 신앙을 가지는데 방해가 되는데요. 왜냐하면 그 성인의 본받을만한 행업이나 순교날이 꼭 내 생일과 맞으리란 보장이 없기 때문이지요. 일단 우리 교구의 주교님들도 생일과 축일이 다르니까요.

  사실 신앙생활을 잘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도 그렇습니다. 내 방식과 맞으면 좋은 종교, 내 생각에 동의하지 않으면 다른 종교로 바꿔타려는, 심리는 신앙의 출발단계부터 무엇을 취하고, 무엇을 버려야 할지 모르는 상태라고 봐도 무방하겠습니다. 원래 진리는 불편합니다. 사람이 살고, 죽고, 병들고 늙어가는 가장 기본적인 모습은 사실 그리 달가운 상황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요사이 그런 진리를 피하고자 하는 행동이 자신의 이익과 욕망에 따라 움직이는 자세입니다. 이익과 욕망을 채워주는 곳은 당연히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줍니다. 기분도 좋구요. 하지만 뒤는 보지 못하는 형국입니다. 당장 청량음료를 마셨다고 해서 기분은 좋아지지만 따라오는 갈증은 계속 생기듯, 예수님이 기적을 많이 베푸신 곳에 가셔서 그 고을을 꾸짖는 것도 이해가 갑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린 뭘해야 하겠습니까? 남들과 다르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런 자세가 우리를 지켜줍니다. 우리에게는 가르침인 복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역사 속에서 살아왔던 성인들의 본받을만한 행동이 있고요. 그리스도의 몸인 성체의 힘을 통해 우리가 더 나은 실천의 삶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그러기에 복음은 죽은 글자가 아닌, 오히려 혼란한 생활의 등불이 되어줄 것입니다. 당신의 뜻이 나를 통해 무엇을 바라시는가?’ 를 헤아릴 때, 나는 그 바탕 위에 굳건히 서서 참회할 것은 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용기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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