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4주일. 에제 2,2-5; 2고린 12,7-10; 마르 6,1-6
공부를 잘하기 위해서 할 일 중 하나는 일단 요약을 잘해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었나? 를 알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여쭤보겠습니다. 가톨릭 교회는 그동안 3가지 방식을 통해서 자기 자신을 드러냈습니다. 즉 ‘이것을 하면 가톨릭 교회다’ 라고 일컬을 수 있는 3가지 방식이 있는데 아십니까? ① 하느님 말씀의 선포, 복음선포입니다. ② 하느님께 드리는 공적 찬미예절인 전례와 성사생활 ③ 세상과 이웃을 사랑하는 봉사활동이 그것입니다. 이 3가지를 하면, 가톨릭 교회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요. 물론 이 3가지가 다 중요합니다만, 그 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것을 꼽아보라면 뭘까요? 무엇일 것 같습니까?.. 제가 이 질문을 참 많이 던져보았는데요. 많은 분들이 복음선포와 이웃사랑을 말씀하십니다만, 실은 2번째인 하느님께 드리는 전례와 성사생활이 중요한데요. 이제부터 이유를 말씀드립니다.
여러분이 밖에 나가서 성경을 들고 복음전파를 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여러분 말을 곧이곧대로 잘 듣습니까?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려운 사람을 돕는다고 찾아가서 뭘 해주면, 항상 고맙다는 말을 듣습니까? 아닙니다. 반대로 욕을 먹거나 짜증을 내기도 합니다. 이렇듯 사람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반응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를 베푸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기대합니다. ‘내가 뭘 해주었으니 그에 따른 반응이 올거야..’ 라고요. 하지만 그 기대와 어긋나는 반응이 나올 때, 그때부터 나는 이런 생각을 품습니다. ‘나 상처받았어.. 내가 이렇게까지 해줬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다시는 안 할 거야..’ 등등의 반응이 나옵니다. 이른바 내가 거절당했으니까요. 그러기에 아까 질문의 보기로 돌아갑니다. 두 번째 보기인 ‘하느님께 드리는 찬미예절인 전례와 성사생활’ 이것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처럼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와 똑같은 것을 보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2차 바티칸 공의회 전례헌장에도 이런 말이 나옵니다. “전례는 교회 활동이 지향하는 정점이며, 동시에 거기에서 교회의 모든 힘이 흘러나오는 원천이다.” 우리가 예상한 반응과 다르기에 인간적으로 우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례와 성사생활을 통해 우리가 힘을 받는다면, 끊임이 없고, 지치는 것이 없는, 복음전파와 이웃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데요.
오늘 말씀들이 그런 내용들이었습니다. 1독서는 에제키엘 예언자가 예언을 합니다. “그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실 때, 영이 내 안으로 들어오셔서 나를 일으켜 세우셨다. 그 때 나는 그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 하지만 듣는 사람들의 반응은 신통치 않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이 듣든, 듣지 않지않든, 자기들 가운데 예언자가 있다는 사실만은 알게 될 것이다.” 하고 끝을 맺지요. 이른바 ‘나 분명히 말했다. 하지만 거부한 것은 너희들이야~’ 라는 셈이죠. 에제키엘 예언자가 인간적으로 힘들었겠지만 그것으로 좌절했을까요? 복음도 비슷한 내용입니다. 예수님이 고향에 가셔서 여러 가르침을 펴십니다. 왜 고향을 가셨겠습니까? 좋은 것을 누구보다도 가까운 고향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으셨겠지요. 하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별로입니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을까?.. 하면서 못마땅하게 여깁니다.’ 그 안에는 질투도 있었을 것이고요. ‘나 옛날부터 쟤 아는데..’ 라는 선입견도 있었겠죠. 그래서 기적의 힘을 그들 스스로 막아버립니다. 예수님 마음도 당연히 불편하셨을 것입니다. 그럼 그것으로 끝내는 게 맞을까요? 여기에 2독서인 사도 바오로를 바라봅니다. 그는 지병이 있는 가운데에서도 복음 전파를 폅니다. 물론 아까 두 인물처럼 반대하는 이들과 맞서야 하는 현실상황은 비슷합니다. 그러기에 약할 수 있는, 약해져 가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기도하지요.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리스도의 힘이 나에게 머무를 수 있도록, 나의 약점을 자랑하렵니다. 내가 약할 때 오히려 강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약할수록 나는 하느님을 더 찾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음을 알기에 이런 고백을 하는데요.
사랑하는 상도동 본당 교우 여러분
사실 밖의 세상은 내가 약하고, 약점을 보일수록, 지독하게 거기를 파고들며 나를 괴롭히긴 합니다. 하지만 그 약점을 통해 우린 하느님을 더 찾으면서 내가 보지 못했던 것을 만나게 해주기도 하고요. 내가 해보지 않았던 방식을 택하게 도와주기도 합니다. 그러니 우울하거나 좌절하지 마십시오. 예언자도 예수님도 실패하신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끊임없이 주님의 은총을 받으며 용기내시길 바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