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5주일. 아모 7,12-15; 에페 1,3-14; 마르 6,7-13
오늘 농민주일을 맞이하여 중국 남북조 시대의 승려 설차화상이 지은 ‘모를 심으며’ 라는 시를 먼저 소개하겠습니다.
푸른 모 쥐어 논에 가득 심고
고개 숙이니 물 속의 하늘이 보이네
마음이 맑고 깨끗하니 비로소 도를 이루고
뒷걸음치는 것이 원래 앞으로 나아가는 것
이제는 기계로 모내기를 하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기계가 못하는 구역은 사람 손이 필요할 수 밖에 없습니다. 마지막 구절에 나온 것처럼, 모를 심을 때는 뒷걸음질을 치면서 심어야만 하구요. 그러면서 고개를 숙일 때, 물 속에 비쳐진 하늘을 보며 한 해 농사가 잘되기를 바라는 기원과 현실에 감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마치 거꾸로 가야만, 참되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은, 그저 모를 심을 때만 벌어지는 일은 아닐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장의 이익을 얻고 싶다고 목표를 향해 무조건 매진하기보다는 먼저 주님께 겸손된 자세로 머리를 숙이는 자세가 필요하구요. 모두를 살리기 위해 자신을 죽일 줄 아는 희생과 헌신도 필요한데요.
오늘 말씀에 나오는 복음 전파를 위해 파견되는 제자들의 상황도 앞의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길을 떠날 때는 지팡이 외에는 아무 것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 솔직히 이것도 필요하고, 저것도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당신은 왜 그런 말씀을 하실까요? 예전과 다르게 정보가 많아지면서, 아는 것이 늘어났는데도 불구하고 예전과 더 어려운 상황이 발생됨을 알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불안함’입니다. 책과 인터넷, 블로그 등을 통해 더 확연히 알 수 있을 것만 같은 세상인데, 우린 왜 예전보다 더 불안함에 시달릴까요? 그것은 바로 정보를 받아들이는 우리의 자세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요? 배운 것이 많고, 아는 것이 많아졌지만 그럼에도 동반되어야 할 첫째 조건은 바로 ‘자기 확신’ 입니다. 비록 밑천이 이것 밖에 되지 않아도, 있는 그것을 가지고 헤쳐 나가는 자세, 그 단순하고, 담백하고, 우직한 자세가 마치 돌직구를 던지는 투수처럼 자신 있게 공을 뿌릴 수 있는데요. 그렇다면 2독서에 나온 사도들의 단순하고 우직한 자세는 어떤 것이었을까요? 이 말씀을 읽어드리며 여러분의 생각을 여쭙도록 하겠습니다.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없는 사람이 되게 해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은총을 우리에게 넘치도록 베푸셨습니다. 당신의 지혜와 통찰력을 다하시어 당신 뜻의 신비를 알려주셨습니다.” 과연 이 말에 여러분도 동의하십니까? 이들의 확신어린 주장에 대해 동의를 하십니까? 그런데도 불안하시다면 우린 이것을 염려해볼 수 있습니다. 주님의 방식보다 내 생각을 더 우위에 놓으며 사시는 것은 아니신지요. 사실 성직자로 수도자로 살면서도 이와 비슷한 상황을 맞이할 때가 있습니다. 세상과 맞닿아 있기 때문인지, 성당에서 벌어지는 일을 빨리 해결하고 매듭짓고자, 밖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방식을 쓰는 것이 제일 빠르고 확실하게 보일 때가 있습니다. 이른바 유혹이지요. 그래서 교우들이 바로 좋아해주고, 반응이 좋은 것을 선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언제나 좋지만은 않았는데요
사랑하는 상도동 본당 교우 여러분
1독서의 아모스 예언자는 말합니다. “나는 그저 가축을 키우고 돌무화과나무를 가꾸는 사람이다. 그런데 주님께서 나를 붙잡으셨다.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여라” 그래서 자신이 예언을 한다고요. 마태오 복음 21장에도 비슷한 얘기가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 가서 가르치고 계실 때,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묻습니다.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그리고 누가 당신에게 이런 권한을 주었소?” 그러자 예수님은 되묻습니다. “나도 너희에게 한 가지 묻겠다. 요한의 세례가 어디에서 온 것이냐? 하늘에서냐, 아니면 사람에게서냐?” 그러자 사람들은 혼돈에 빠집니다. “‘하늘에서 왔다.’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않았느냐?’ 하고 우리에게 말할 것이오. 그렇다고 ‘사람에게서 왔다.’ 하자니 군중이 두렵소. 그들이 모두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니 말이오.” 그래서 그들이 예수님께 “모르겠소.”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 머리를 굴리며 대답도, 실천도 안하는 이들이라면 일일이 상대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린 이미 당신을 통해 권한을 받았습니다. 그러기에 우린 하던 일을 계속 할 뿐입니다. 그럴 때 내가 사는 이유도 알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묵묵히 본인의 길을 잘 걸어가시길 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