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5주간 목요일. 이사 26,7-19; 마태 11,28-30
우리가 잘 아는 다산 정약용은 형님인 정약전, 정약종과 함께 천주학을 공부한 것에 연루되어 유배를 갑니다. 이 중에 순교한 사람은 정하상의 아버지 정약종이구요. 정약전은 배교를 하여 흑산도로 유배되어 거기서 생을 마칩니다. 가족이 연루되었기에 정약용도 조사를 받았고요. 1801년 강진으로 유배를 간 후, 3년째 되던 그의 나이 43살 때에, ‘걱정을 흘려보낸다’ 는 시를 쓰는데요. 조금만 발췌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늘은 그 아끼는 것을 완성하고자 내게 유배기간을 내리셨다’ 유배를 하늘이 자기에게 준 기회라고 보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는 날갯죽지 꺾인 새와 같다’ 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공부하는 사람이 공부하는 이유가 백성을 돌보고 벼슬을 하기 위함인데, 다시는 벼슬을 할 수 없기에, 언제 끝날 지 모르는 시간 동안, ‘유배를 하늘이 준 벼슬로 여기고 덕을 쌓고 철저히 공부하겠다’ 말합니다. 비록 그가 원했던 삶은 아니었지만 결국 그는 거기서 우리가 잘 아는 주요한 저서들을 대부분 집필하는데요.
오늘 말씀에 나온 내용도 이와 비슷해 보입니다. 쓰윽 내용을 들으면, 대단히 희망적이고 하느님만 찾으면 다 될 것 같이 보이지만, 실은 그들의 삶은 고달팠습니다. 이사야서의 배경은 이스라엘 왕국이 아시리아에 의해 무참히 깨지는 상황에서 “저의 넋이 제 속에서 당신을 갈망합니다.” 는 고백이 나오고 있고요. 복음의 상황도 로마의 압제에서 서로 갈라진 민족들 속에서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고 예수님이 말씀합니다. 솔직히 말해 지금의 상황이 하느님을 찾기보다는 오히려 딴 데서 뭘 더 해야할 것만 같고, 그래야만 오히려 지금의 난국을 타개할 수 있다고 여기는 생각이 드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별로 다를 바가 없는데요.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현실속에서 무위도식 하지않고 무언가를 했습니다.
정약용처럼 책을 쓰건, 이사야처럼 하느님을 부르건, 예수님처럼 주위 사람들을 챙기며 돕건, 이들은 무언가를 했기에 오늘날 우리가 아는 그분들이 되실 수 있었습니다. 물론 인간적으로 당장의 상황이 내 맘대로 돌아가지 않기에 기가 꺾이고, 침울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우리를 죽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기에 오히려 하느님이 주신 기회로 여기며 지금을 잘 버텨나가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