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6주일.

2018. 7. 21. 오후 2:4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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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16주일. 예레 23,1-6; 에페 2,13-18; 마르 6,30

  전보다 경제사정이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어제 오늘 나온 얘기가 아니었습니다만, 항상 말하길 단군 이후로 최고의 경제난이라는 표현은 이제 진부한 말이 되고 있는데요. 하지만 이런 와중에서 놓치지 않고 진정 챙겨봐야 할 점을 살펴보겠습니다. 여러 가지 중에서 생활과 관련된 내용입니다. 많은 것을 아낍니다. 절약합니다. 뭐 당연한 이치입니다. 예를 들면, 겨울잠을 자는 동면하는 곰을 찍은 다큐멘타리에도 나옵니다. 거기서도 곰은 최대한 몸을 뒤척이지 않으며, 에너지를 어떻게든 아끼면서 봄까지 버티는 현장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살기위한 몸부림이지요. 마찬가지로 회사나, 집안을 돌보시는 여러분도 그럴 것입니다. 데리고 있는 사원들의 월급을 제 때 잘 주기 위하여 애를 쓰시고요. 이것은 한 집안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럼 이제 교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를 바라보게 됩니다. 실상 교회라는 곳도 세상과 떨어져 있는 곳이 아닙니다. 우리 본당이 있는 장소도, 역세권 지역에 큰 도로가 앞에 놓여있습니다. 당연히 세상의 흐름에 따를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세상의 흐름과 꼭 맞추어서도 안됩니다. 그렇다면 여기를 더 이상 교회라고 부르지 않을테니까요. 오늘 여러분이 들으신 말씀에 나온 목자의 결정과 행동하는 패턴은 그다지 경제적이지 않음을 보셨는데요.

  1독서에 예레미아 예언서에 나온 내용은, 못된 목자로 인해 양 떼가 흩어진 상황에서 나온 예언입니다. 너희는 내 양 떼를 흩어버리고 몰아냈으며 그들을 보살피지 않았다. 이제 내가 너희의 악한 행실을 벌하겠다. 그런 다음, 모든 나라에서 살아남은 양들을 다시 모아들여, 그들이 살던 땅으로 데려오겠다. 내가 그들을 돌보아 줄 목자들을 그들에게 세워주리니, 그들은 더 이상 두려워하거나 당황하지 않고, 그들 가운데 잃어버리는 양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이 내용을 본다면, 그동안 목자란 사람들이 책임을 지지 않았었다는 말이 됩니다. 그저 자기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느라 맡았던 사람들을 돌보지 않았기에, 나중에 예수님을 통해 그 목자를 세우겠다는 예언인데요. 그 목자는 이제 복음을 통해 만납니다.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기 시작하셨다.” 실상 그들을 챙길 책임자가 없진 않았습니다. 바로 그들을 다스리는 왕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기 할 도리를 하지 못합니다. 지금의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국민들을 위해 복지를 부르짖지만, 지금 제도의 시스템으로는 실상 모두를 풍족하게 챙기지 못합니다. 여전히 복지의 사각지역은 존재합니다. 그렇다면 역사공부를 해보지요. 원래 교육을 시켜주고, 환자를 돌보는 일들을 누가 했었습니까? 바로 교회가 했었습니다. 이제 그것이 국가로 넘어갔기에, 세금을 통해 당연히 국가가 해주는 것처럼 여기지만, 처음부터 그러질 않았습니다. 다행히 예전보다는 국가가 많은 역할을 하고 있지만, 전부를 다 해내지 못합니다. 국가가 자기의 역할을 해내려면 당연히 세금부담이 크니,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래서 교회의 손길이 여전히 필요한 것입니다. 교회는 처음부터 경제적인 관점에서 출발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이 내신 사람을 보고, ‘생명이 숨을 쉬는 여린 호흡을 보고서 접근하였습니다. 당연히 회사를 경영하는 기업가의 마인드로 보자면, 여기처럼 비능률적이고, 비경제적인 곳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렇게 비경제적으로 보이더라도 우린 해야 합니다. 그게 사랑이라면 말입니다. 그래서 2독서에도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몸으로 유다인과 이민족을 하나로 만드시고 이 둘을 가르는 장벽인 적개심을 허무셨습니다. 그렇게 하여 두 인간을 하나의 새 인간으로 창조하시어 평화를 이룩하시고, 십자가를 통하여 양쪽을 한 몸 안에서 하느님과 화해시키시어 그 적개심을 당신 앞에서 없애셨습니다.”

  사랑하는 상도동 본당 교우 여러분

지금의 어려운 처지는 우리가 과연 무엇을 해야하는 사람인지를 알려줍니다. 어려운 경제난, 이민자들이 계속 들어오는 현실 속에서, 결국 같이 살기 위하여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하느님과 예수님은 한 명이라도 더 챙기시려고 마음을 쓰시고 행동하셨는데, 우린 왜 한 명이라도 더 떨궈내기 위하여 애를 쓸까요? 이 차이부터 봐야겠습니다. 그래야 그분의 마음을 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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