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부모 요아킴과 성녀 안나 기념일.

2018. 7. 25. 오후 4:5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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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부모 요아킴과 성녀 안나 기념일.예레 2,1-13;마태13,10-17

  질문을 던지며 시작하겠습니다. 결혼하신 분 중에서 결혼생활이 이런 것인지 알았더라면, 난 절대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시는 분, 손 한 번 들어보십시오. 잘잘못을 따지자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순수하게 물어보는 것입니다. 좋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신부생활이 정말 이런 줄 알았더라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겠다.’ 는 생각이 듭니다. 이 말씀은 후회가 든다는 말이 아닙니다. 단지 나의 예상대로 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솔직히 그렇습니다. 알고 싶지 않은 것도 알게 되고요. 듣고 싶지 않은 것도 듣게 됩니다. ,간접적으로 알게 되는 것들이 꼭 유쾌하지만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소득의 열매가 있었다면, 난 예전보다 성장했다 는 점인데요. 그렇습니다. 전 이제 이 결정을 통해 더 이상 아이가 아니라 어른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래서 기쁜데요.

  오늘은 성모님의 부모님인 요아킴과 안나 성인의 기념일입니다. 이 분들의 삶도 순탄치는 않았습니다. 남들과 유별났습니다. 그렇기에 속상하고 불편하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간절한 기도를 통해 그들이 꿈꿀 수 없었던 것을 만났듯이, 남들과 달랐기에 그들만의 신앙고백을 할 수 있었는데요. 독서에도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사제들도 주님께서 어디 계신가? 하고 묻지 않았다. 율법을 다루는 자들이 나를 몰라보고 목자들도 나에게 반역하였다. 예언자들은 바알에 의지하여 예언하고, 아무런 이익이 되지 않는 것들을 따라다녔다.” 다른 구약의 예언자들과 비슷한 상황입니다. 상황이 이 정도라면 힘이 빠질만 합니다. 다 집어치우고 관두고 싶겠지요. 저도 어느 정도 공감이 갑니다. 기도에 관심이 없는 신자들, 주님의 가르침과 반대로 가는 신자들을 만나면, 화가 납니다. 그래서 동료들 중에는 다른 사목을 알아보거나, 다른 분야를 기웃거립니다. 저도 당연히 고민이 됩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럼 이제 어쩌지? 21세기의 어려움 속에서 신앙이 전파되려면 어떻게 하지? 가르쳐주십시오 라는 기도가 절로 나옵니다. 그런 고민을 안고 있는 이들에게 주님은 허락하십니다. 너희에게는 하늘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저 사람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너희의 눈은 볼 수 있으니 행복하고, 너희의 귀는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

  우린 다른 이들과 다르게 살면서 각자의 영역에서 무언가를 만나며 일하는 이들입니다. 비록 그 만남들이 내가 바란대로 움직이지는 않았지만, 순수하게 당신을 따르며 몰입할 때, 내 삶은 예전과 다른 차원으로 옮아가며 깨닫음을 주시는데요. 온전히 나에게만 주시는 그분의 허락하심을 피하지 말고 잘 받아들이며 가시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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