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9주일. 1열왕 19,4-8; 에페 4,30; 요한 6,41-51
여러분은 무엇에 관심이 있습니까? 아무래도 사람은 관심이 가는 면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대다수 사람들은 ‘알아주는 맛’ 에 도취되어 있습니다.. 이른바 ‘남이 나를 칭찬하거나, 감사의 말을 듣길 바라거나, 박수를 받거나, 뭔가 잘한다는 말을 듣거나, 또는 뭔가 상응하는 물건을 받거나’ 하면서 남이 나를 알아주는 ‘맛’ 이 있기 때문에 더 그 맛을 갈구하지요.
저도 예전에 그랬습니다. 학생 때, 그리고 잠시 대학로에서 연극할 때 그랬습니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관객들이 내게 관심을 보일 때, 뭔가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느낌.. 좋지요.. 그러다가 잠시 홀로 있을 때가 있었습니다. 오직 저 자신만을 바라보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인터넷, 휴대폰 다 끊고서요. 그렇게 바라본 시간은 객관적인 진짜 나를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을 견디기 쉽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남들의 칭찬만큼 제가 그렇게 뛰어난 사람도 아니었고요. 주위의 평판과 달리 빈구석과 약점이 많았고요. 남이 알아주지 않을 때는 견디기 힘들었고요. 그나마 남들이 들려준 칭찬도 실제로 제가 잘해서라기보다는 예의나 격려의 차원이었던 것이 많았음’ 을 알았을 때, 저는 우울해졌습니다. 자존감이 바닥으로 내려갔다기보다는 오히려 실제의 내가, 그리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음을 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우울함 속에서도 계속 해왔던 것은 기도였습니다. 왜냐하면 ‘나를 만드신 하느님께서 나를 제일 잘 아신다는 믿음의 확신’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시간 속에서 저는 매달렸습니다. ‘제가 진짜로 어디에 관심이 가 있어야 합니까?’ 하고요. 한때 연극을 하면서 배역을 맡아서 캐릭터를 분석할 때, a4지 10장 정도로 마치 스타 100문 100답처럼 다각도로 성격분석을 했던 적을 떠올리며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알았습니다. 사람은 겉모습이 아니라 ‘사람이 가진 영혼’ 에 관심을 가질 때, 나를 살리고 남들도 살릴 수 있었음을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믿고 따르는 신앙은 먼저 ‘자신의 영혼을 구하고 자신의 현재상태의 영혼을 돌보는 데 중점’ 을 두고 있습니다. 그래야 나중에 하느님께 잘 돌아갈 수 있고요. 내 곁에 있는 사람들도 도와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어디에 관심이 가 있습니까?자신의 내부상태에 관심이 있기보다는 외부적인 면에 관심이 더 가 있지 않습니까? '돈, 학력, spec, 지위, 명예, 껍데기 같은 외향적인 멋, 남들이 날 어떻게 볼까? 노심초사하는 남의 시선' 등에 말이지요. 그러나 그건 진짜 real의 삶이 아닌, 잠시 바람 같은 것들입니다. 유행에 따라, 시류에 따라, 달리 평가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때 역사 속에서 잘 나갔던 인물들이 이제는 그 때와 다르게, 반대로 평가받고 있는 사태를 보면서 여러분은 무슨 생각이 드십니까? 그래서 저는 사람을 살리고 도와주는 신부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신부가 되면 예수님이 제정하신 미사안에서, 빵이 주님의 몸인 성체로의 거룩한 변화를 직접 체험할수 있고요. 제일 가까이에서 목격할 수 있기 때문이고요. 그 성체를 교우들에게 영해주면서 변화되는 신자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번 주와 이어진 ‘생명의 빵’ 복음은, 그것을 우리에게 알려주십니다. 당신의 살과 피를 모시면서 모든 사람이 세상의 모든 것을 주님의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만들어주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무슨 음식 좋아하세요?’ 라는 물음은 상대방의 취향을 알아가는 시도입니다. 좋아하는 음식만 알더라도 어느 정도 성향을 파악해 볼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알랭 드 보통’ 의 책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누가 먹는 걸 가지고 너를 판단하면 네 기분은 어떨 것 같아?” “괜찮을 것 같은데? 그게 어떤 사람을 아는 좋은 방법일 수 있으니까.” 우린 모두 같은 빵을 받아먹습니다. 그 빵은 그냥 맹숭맹숭 받아먹는 것이 아니지요.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힘을 가진, 주님처럼 살게 해주는 빵입니다. 그렇기에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는 이런 말을 합니다. ‘음식으로 고칠 수 없는 병은, 약으로도 고칠 수 없다’ 우린 우리의 삶을 더 낫기를 바라기에, 주님의 몸을 영하고 당신처럼 사는 것이 참된 삶임을 믿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어디에 관심이 있는가? 어디에 이끌리고 있는가?를 알아갈 때 내가 가야할 길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그 길을 잘 가시길 빕니다.
2독서의 말씀을 끝으로 강론을 마치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는 향기로운 예물과 제물로 내놓으신 것처럼 여러분도 사랑 안에서 살아가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