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8주간 목요일. 예레 31,31-34; 마태 16,13-23
잘 모르시는 분들은 교회란 곳이 예전의 것만을 답습하는, 반복하는 곳이라고만 아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알기에, 교회란 꽤나 답답한 곳으로 아시는 분도 있는데요. 물론 일반 교우들이 모인 본당은 그리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만 보일 수 있습니다만, 교회의 문제를 연구하고 고민하는 유럽의 교회나 유학을 다녀오신 분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6개월에 한 번은 큰 학술토론회가 열리고 그동안 연구했던 연구물이 쏟아지면, 거기서 갑론을박의 장이 열리지. 그렇게 10여년의 시간을 논박의 과정을 거쳐 교과서에 실리게 되면, 이를 공부한 신학자들이 나온다. 즉 2008년에 공부하러 유학을 떠난 신부가 10년의 시간 후 2018년 학위를 따고 귀국해 학생들을 가르치지만, 실제로 그가 배웠던 이론은 이미 98년부터 태동된 이론이고, 2008년 정도까지 정리의 과정을 거친 신학 이론은 국내에서는 2018년에야 배운다.’ 말하자면 시작된 지, 이미 20년이 지난 이론을 우리는 마치 새로운 것인 양 배우는 건데요. 사실 교회는 이처럼 활발히 움직이는 곳입니다.
오늘 독서에 “나는 이스라엘 집안과 유다 집안과 새 계약을 맺겠다. 이집트 땅에서 이끌고 나올 때의 계약과는 다르다” 면서 나중에 그것이 실현될 것임을 예고하시고요. 그것이 복음에서 예수님을 통해 “반드시 예루살렘에 가시어 원로들과 수석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흗날에 되살아 나셔야 한다.” 는 새로운 계약의 내용이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못 알아듣고 반대합니다. 일단 자기 생각과 다르고, 그의 출신성분상 그런 예언을 만난 적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지요.
1968년 5월 29일 새로운 서울대교구장님이 되신 당시 김수환 대주교님은 독일에서 배워온 유학공부와 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을 기조로 착좌식 미사에 이런 강론을 하십니다. ‘교회는 모든 것을 사회에 다 바쳐서 봉사하는 세상 속의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아직 미사경본도 우리말로 없던 때에 당시 성직자의 권위를 자랑하던 교회에서 김수환 추기경님은 ‘세상 속의 교회’ 를 사목목표로 삼으시는데요. 이어 혼란했던 한국 정세 안에서 당신은 교회의 정신을 조금씩 실현시켜 가셨기에 지금의 교회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성령의 활동은 감각적으로 잘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분의 움직임은 조금씩, 하나씩 열매가 맺히듯 열려갑니다. 그러기에 우리도 미리부터 그 움직임을 잘 주시하며 다가올 상황을 잘 바라보며 행동해야 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의 일’ 만 생각하는 위험한 사람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