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9주간 목요일.

2018. 8. 15. 오후 10:3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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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19주간 목요일. 에제 12,1-12; 마태 18,21-19,1

  요사이 개인적으로 고민되는 문제가 있습니다. 교우들과 면담이나 고해성사를 주면서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신부와 당사자, 단 둘만 있는, 때에 따라 얼굴도 보지 않는 비밀이 보장된 곳인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다 털어놓지 않으려 합니다. 뭉뚱거려서 말한다거나, 또는 개인적인 사안이라며 사연을 말하지 않는 분들을 발견합니다. 그분들이 보기에 신부님들이 못미더웠겠지요. 또는 말하고픈 것만 털어놓고, 나머지는 입을 열지 않는 것이 뒤탈을 피하는 것이라 여겼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러면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요?

  오늘 말씀은 용서에 관한 말씀입니다. 솔직히 내가 받은 상처가 크면 클수록 상대방을 쉽게 용서하기 힘들다는 것 저도 이해합니다. 그리고 미워하면 미워할수록 내가 더 힘들다는 것도 모두 압니다. 하지만 그래도 잘 안될 때, 우린 무엇을 떠올려야 할까요? 우리가 아는 루카 복음 7장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예수님 발을 적시면서 그 발에 향유를 붓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이를 본 사람들은 쑤군거립니다. 그녀의 행실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이에 베드로에게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적게 사랑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바꿔 표현하면 많이 용서받은 사람은 많이 사랑한다일 것입니다. 결국 그녀는 정성을 드러냈기에 구원을 얻었지요.

  우리는 고해성사를 통해 무릎을 꿇으며, 자기의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으며 아파합니다. 그러면서 반복되는 나의 죄를 미워하고, 거기서 해방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렇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털어놓으면 털어놓을수록, 나는 거기서 해방될 여지가 커집니다. 마치 병원에서 검진을 받을 때, 자신의 상태를 알기위해 피를 뽑고 x-ray를 찍는 것은 당연시 여기면서, 제일 중요한 자신의 영혼의 상태에 대해서는 숨긴다면 신부님이나 이웃들이 여러분을 어떻게 도와줄 수 있겠습니까? 게다가 그렇게 입을 다물기에, 숨기면 숨길수록 하느님의 사랑을 받기 힘들 것이고요. 남으로부터 용서받은 기억이 없다면 남에 대한 배려도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랑받거나 용서받은 기억이 별로 없는 상태에서 나만 사랑과 용서를 베풀면 당장에 손해를 본다고 여길테니까요. 하지만 우린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해 사랑과 용서를 덤으로 받았습니다. 그렇게 받은 기억을 떠올린다면 이제 베풀고 주는 것만 남았겠지요. 자기를 더 열면서 그분의 사랑의 은총을 체험해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나는 받은 사랑이 샘물처럼 넘쳐 올라,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그것을 퍼줄 수 있을 것입니다. 받았던 사랑을 떠올리며, 나누는 체험을 많이 해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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