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0 주간 토요일. 에제 43,1-7; 마태 23,1-12
예전에 며칠 간 부산을 간 적이 있습니다. 부산 망미동 성당 옆에는 흰돌 실버타운이란 곳이 있는데요. 거기서 미사를 드릴 기회가 있었습니다. 헌데 그분들을 가만히 살펴보니, 지금은 늙어서 그곳에 계시지만 예전 젊을 때는 그야말로 한가닥 하신 분들이 많이 계셨습니다. 예전에는 무서울 것 하나 없고 자기가 추구하고자 한 것들을 하셨는데 지금은 이곳에서 조용한 삶을 살고들 계십니다. 그분들을 보면서 과연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에게 질문 하나 드려봅니다. “여러분은 세상을 살면서 무엇을 남기기 위하여 살고 계십니까?” 우리는 그동안 많은 교육을 통하여 ‘사람은 입신양명을 해야한다.’ ‘호랑이가 가죽을 남기듯 사람은 이름을 남겨야 한다’. 며 끝없는 자기 존재의 확장을 꿈꾸며 살았습니다. 마치 율법학자들이 율법을 가르치면서 자기 욕심을 챙겼듯이요. 이런 이들에게 주님은 “그들이 하는 일이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가장 높은 사람이 되려면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모두가 이름을 드높이려고 안간힘을 쓰고 살지만 오늘 독서에 나온 에제키엘 예언자는 다르게 말합니다. “사람의 아들아, 이곳은 내 어좌의 자리. 내 발바닥이 놓이는 자리다. 내가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에서 영원히 살리라” 결국 당신이 가신 길을 살아갈 때, 내가 진정 사는 이유를 알 수 있는데요.
과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결국 우리는 가톨릭 성가 62장 제목처럼 ‘주님을 뜻을 이루소서’ 라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 주먹을 쥐고 태어나지만 결국 떠날 때는 손을 펴고 세상을 떠나듯이, 자기 힘으로 세상을 사는 듯 보이지만 실은 하느님 손바닥 안에서 살아갈 때 은총도 자연스럽게 다가오는데요. 우리는 포도나무의 가지처럼 당신과 항상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 연결이 진정한 열매를 맺게 해줍니다. 벌써 주말입니다. 한 주간 나는 주님을 어떻게 섬기면서, 주위 사람들을 바라보려 했는가? 살펴보신다면 다가오는 다음 주는 한결 편안하게 주님과 가까워져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