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빈첸시오 드 폴 사제 기념일. 코헬 1,2-11; 루카 9,7-9
모두가 우리가 살려는 삶을 살지 않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우리가 원하는 삶을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것이 심지어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이라도요. 왜냐고요? 쉽지 않으니까요. 사람들이 원하고 바라는 것은 따로 있어 보이니까요. 하지만 말 그대로, 정말 있어 보입니까? 아니면 진짜 있습니까? 아니면 흘러가는 바람 같은 것일까요?
오늘 독서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 모든 노고가 사람에게 무슨 보람이 있으랴?” 이 말만 들으면 ‘별거 없는 인생, 즐기다가 가는 것이 좋지 않겠냐?’ 라고 들릴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이런 것을 우리에게 안겨주지요. ‘모든 사람이 하고 있는 노력들.. 과연 그것이 누구를 위한 것일까? 없앤다고 없어질까?, 그렇게 없앤다고 과연 미래에도 그렇게 될까?’ 과연 그렇습니다. 그동안 수 많은 정치인들이 ‘가난을 없애겠다’ 고 공약을 걸었지만 소득 격차는 더 벌어졌고요. 정직하게 버는 이만 불쌍해 보이는 세상처럼 여겨집니다. 오늘 기념일을 맞은 가난한 이들의 수호자 빈첸시오 성인은 처음부터 가난을 좋아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가난하게 살았기에 가난을 미워하고 혐오한 인물입니다. 그래서 그 당시 어머니에게 쓴 편지를 보면 ‘교회에서 좋은 직무를 맡아 돈을 벌면 조기 은퇴를 하고 고향에 돌아가, 가족과 편하게 지내고 싶은데 그것이 잘 안된다’ 고 안타까워 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것만 보면 효자라고 볼 수 있지만 좋은 신부님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던 때에 당시 파리에서 영적쇄신과 교회 개혁 운동이 일어나고요. 여기에 영적 지도자인 뒤발 신부님을 통해 ‘섭리의 발꿈치를 밟지 않아야 한다.’ 는 진리를 배웁니다. 즉 자신의 계획이나 의지에 집착하기보다 하느님을 서서히 따르라는 것인데요. 그러면서 가난한 이들을 만나며 변화가 일어났고요. 가난한 이들을 먼저 선택할 때 그는 하느님의 현존성을 깨달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복음에서 헤로데는 말합니다.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세상을 구하려는 이들을 아무리 죽이더라도, 보내는 분의 손길은 멈춤이 없습니다. 정말 할 것을 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원하시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당신의 섭리이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