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4주일.

2018. 9. 16. 오전 5:3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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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24주일. 이사야 50,5-9; 야고 2,14-18; 마르 8,27-35

  뭔가를 잘 알고, 잘 하려면 필요한 것들이 있습니다. 여기를 거쳐온 사람들이 말해온 증언, 시스템, 역사의 과정, 이와 반대되는 세력들의 행태, 발생되어온 문제점, 그리고 불필요한 것이 무엇이고 이를 제거하기 위한 실천 등인데요. 헌데 그런 것들에는 별 관심이 없고, 단지 따라가면서, 별 깊이없이, 문제의식조차 없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냥 흘러가는 데로 보고만 있는데요. 그런 분들을 보며 이런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프랑스어로 딜레땅뜨(dilettante) 입니다. 물론 이 용어에는 칭찬의 의미도 있습니다. 교양인이라는 뜻도 있고요. 문화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마추어라는 데 있습니다. 그러니까 보통 사람에 비해서는 예술적 관심이 많지만, 전문가에 비하면 정확성이나 책임성이 뒤떨어지는 정도의 겉핥기의 수준을 가진 사람을 말합니다. '관심은 많지만 제대로 알지는 못하는 사람', '어떤 분야에 깊이 탐구하지 않고 피상적으로만 아는 사람' 당연히 이런 사람은 그 당시 유행하는 사안에 대해 민감하고요.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봐 줄까?에 더 신경을 씁니다. 그러기에 토마스 아퀴나스도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너의 토대 위에 너무 많은 자재를 올려놓지 마라. 기반이 단단해지기 전에는 아무것도 세우지 마라. 그렇지 않으면 전체 건물이 무너진다.’ 한 사람이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못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데도, 세상은 우리가 그렇게 살아야만 한다고 자극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제대로 하는 것일텐데요.

  오늘 말씀이 그러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물어보십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이미 여러분께서는 성경의 줄거리를 다 아시기에 답변을 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제자들은 좀 달랐지요. 그 분에 대한 선지식도 없었고, 그 분과 직접 부딪혀가며 생활해가면서 알아가야 했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읽어봤다는 우리도 꼭 답변을 잘 한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라는 분이 나를 구원해주시고, 내가 따라야 할 진정한 삶의 방법을 알려주시는 분이라고 알기보다는, 그저 괜찮은 보장성 보험 하나 들 듯이 종교 하나 있으면 되는 정도, 게다가 세상에서 말하는 이미지 괜찮은 정도의 종교 중에 하나, 또는 그 분 말씀대로 하면 좋다는 것을 아는 정도. 당신의 삶을 닮고 싶긴 하지만 그것이 실현되기는 힘들다고 생각하는 수준이라면... 우리가 갖고 있다는 이 신앙도 딜레땅뜨라고 칭할 수 있지 아닐까요? 주님에 대해서는 확실히는 모르는, 신앙의 아마추어 수준 말이지요.

오늘 당신은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와 복음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하십니다. 이른바 나는 목숨 내놓고 복음 선포를 하는 사람이다. 이 정도는 되어야 신앙인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께서도 여러분이 하시는 일에 목숨과 맞바꿀만한 이 정도의 열정과 사명감이 있으십니까? 그러기에 그 분이 쓰신 방법도 다른 사람들과는 다릅니다. 1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오지요. 나는 매질하는 자들에게 내 등을, 수염을 잡아뜯는 자들에게 내 뺨을 내맡겼고, 모욕과 수모를 받지 않으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폭력과 심문에 대응하시는 주님의 방식은 침묵이었습니다. 나는 잘 하고 있다. 제대로 하고 있다하고 소리칠 만한데 당신은 가만히 대응하시면서 당신만의 방식으로 할 일을 하십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가만히 보면 소리만 요란한 빈 깡통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까지 그래서는 안되겠는데요.

  사랑하는 상도동 본당 교우 여러분

예수님께서 인간적으로 대단하셨던 이유는 그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죽음을 각오하고도 자신의 사명감을 찾아가셨다는 데 있습니다. 하지만 대다수가 두려워합니다. 자존심, 위신, 갖고 있던 것들을 잃을까봐서요. 하지만 정말 한 번뿐인 인생이라면, 나 자신한테 솔직해야 하지 않을까요? 내가 진정 가야할 자리를 찾아나서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살고 있는 이 인생마저 아마추어로 살 수는 없잖습니까? 내 인생은 리얼한 프로입니다. 내가 몸 바쳐서 일하고, 내가 땀 흘려 벌고 있으니까요. 게다가 세례 받은 모든 신자라면 자기의 삶을 살아야 하는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신앙인이라 불릴 만한 합니다. 그러기에 찾아가야 하겠습니다. 진정 나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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