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7주간 수요일. 갈라 2,1-14; 루카 11,1-4
같은 하느님 아버지 아래서 다양한 은사가 공존되고 있음은 참으로 감사할 일입니다. 저는 교구신부로서 할당된 본당 구역에서 교우와 지역민들을 만나고요. 수도회에 계신 분들은 설립자의 정신에 따라 본당이 미처 하지 못하는 부분을 맡거나 또는 다른 영역에서 도움의 역할을 합니다. 교우들은 비신자와 만나는 세상의 현장에서 하느님의 일이 구현될 수 있도록 뭔가를 하시고요. 어떤 분들은 우리가 잘 알지도 못하는 부분에서 다른 뭔가를 하십니다.
여기서 가끔 우리들의 협소하고 갇혀지내는 듯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건 바로, '교회 안에서는 신자' , '교회 밖에서는 비신자와 별 다를 바 없는 모습' 입니다. 같은 신앙인인데 왜 그분들은 교회가 아닌 곳에 있으면 비신자와 같은 모습을 보일까요? 그 이유 중 하나는 '두려움' 일 것입니다. 남들과 다르면 차별받을 것 같은 두려움이지요.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는 그런 두려움에 사로잡혀 위선행위를 한 베드로에게 공개적으로 말합니다. "당신은 유다인이면서 유다인으로 살지 않고, 이민족처럼 살면서 어떻게 이민족들에게는 유다인처럼 살라고 강요할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이른바 베드로는 다른 민족들을 만날 때는 율법을 초월하여 살듯이 하면서 같은 유대인 민족을 만나면 율법을 준수하는 태도를 문제삼은 것입니다. 이른바 따돌림을 당할까봐, 신앙때문에 불이익을 받을까봐 '눈치' 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살지 못했던 것인데요. 복음에도 잘 나온 주님의 기도 중 " 저희의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 는 나를 바라보고 있는 세상의 시각에 대해 약해지는 우리 자신을 살려달라고 기도합니다.
우린 교회 안에 있을 때나, 밖에 있을 때나, 심지어 혼자 있을 때조차도 주님의 자녀입니다. 이 사실을 놓치지 말고 두려움 없이 살아갈 때 참다운 자녀로 거듭날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