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31주간 목요일. 필리 3,3-8; 루카 15,1-10
신부님이나 수녀님 중에도 능력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지금은 은퇴하신 김중호 신부님이나 돌아가신 이태석 신부님처럼 의사인 분도 있고요. 토마스 머튼처럼 작가였던 분도 있고요. 에디트 슈타인처럼 철학자였다가 수녀님이 된 분도 있습니다. 이분들의 공통점은 이러합니다. 먼저 의사로 살다가, 작가로 살다가, 철학자였다가 나중에 신부님, 수도자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교회는 이처럼 다른 삶을 살다가 성직자 수도자가 되는 것은 허락하지만, 반대로 성직자 수도자였는데, 의사가 되거나 다른 세속적인 어떤 직업인이 되는 것은 허락하질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 삶은 온전히 모든 것을 바치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바쳐야 뭔가 더 큰 것을 얻기 때문입니다.
오늘 독서에 나온 바오로는 그야말로 스펙이 좋았습니다. 독서에 나오듯 자랑할 만 합니다. 하지만 뒤이어 이렇게 말하지요. “나에게 이롭던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깁니다.” 주님을 아는 것, 이것이야말로 다른 어떠한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이고, 공동번역 성경은 “이 모든 것을 쓰레기로 여깁니다.” 라고 번역할 만큼 가치를 절하하고 있습니다. 물론 앞서 예를 든 분들은 본인이 가지고 있던 능력으로 다른 이들을 돕는 역할을 하였습니다만, 주님을 더 가까이 모시는 것이 우선임을 알았기에 그런 일도 기쁘게 할 수 있음을 그분들은 알았는데요. 하지만 많은 분들이 주님을 가까이 하는 것보다는, 그런 능력을 가지는 것을 더 부러워들 하십니다. 복음에는 양을 잃고, 은전을 잃은 이가 겨우 그것을 찾았을 때 이렇게 말합니다. “나와 함께 기뻐해주십시오.” 그들은 왜 기뻐할까요? 보통 사람들은 그저 힘 있고, 돈 있고, 능력 있기를 바라지만, 주님을 사랑하는 이들은 그런 것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본인이 가진 것이 부족하여도 그것을 나누려는 마음이 있고요. 그 마음으로 매 번 회개하며 남에게 다가갈 때, 주님은 더 큰 선물을 주신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살려면 능력이 있으면 좋지만, 꼭 능력만으로 사는 것이 아니지요. 잃어버리거나 없어도 될 것은 없어져도 슬프지 않습니다. 없어도 될 것을 아는 이들에게, 버리는 이들에게 하느님은 오히려 더 큰 선물을 주시고요. 더 큰 일을 맡기시는데요. 그것이 보통 사람들이 하고있는 능력과 행동보다 더 큰 역할수행을 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먼저 우리는 마음의 그릇 상태부터 잘 다져가야 하겠습니다. 단순히 뭔가를 바라기보다는 그런 것을 얻고, 담고, 이행할 사람인지부터 봐야 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