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대 바실리오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 학자 기념일
아무 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어본 적이 있으십니까? 요사이 사람들은 이런 짓을 ‘멍~때린다’ 고 표현합니다만, 반면 우린 이런 것을 기도라고 얘기하지요. 여기서 재미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제발 나를 가만히 나뒀으면 좋겠다~’ 하고 말하는 분들이 정작 그런 시간이 실제로 주어지면, 그때부터 불안해 한다는 점입니다. 실제로는 가만히 있는 것을 불편해 하시던데요. 여기서 우린 이런 것을 알게 됩니다. ‘가만히 있기를 원했을는지 모르지만, 정작 우린 가만히 있으면서 뭘 얻을 수 있고, 거기서 뭘 해야 할 지를 알지 못했다.’ 는 점입니다. 우린 고요한 가운데서 뭘 얻을 수 있을까요?
독서는 말합니다. “여러분은 그분에게서 기름부음을 받았고, 지금도 그 상태를 보존하고 있으므로, 누가 여러분을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께서는 기름부으심으로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십니다.” 우린 분명 물과 기름을 통해 세례와 견진을 받았기에 받은 가르침이 뭔지 압니다. 무엇을 배웠습니까? 그 가르침을 확인하려면 뒤이어 나오는 말씀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 자녀 여러분, 그분 안에 머무르십시오. 그래야 그분께서 나타나실 때에 우리가 확신을 가질 수 있고, 그분의 재림 때에 그분 앞에서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복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은 요한보고 “당신은 누구요?” 라고 물었을 때 그는 말합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 요한이 해왔던 행적은 분명 뭔가를 했지만, 그가 자신을 예언자도, 구세주도 아니라 말하였기에 사람들은 그를 시덥지 않게 봤을 것입니다. 사실 그랬습니다. 잠시 주님이 오시기 전에, 그분을 소개하고 준비시킨 전령사 정도이지요. 게다가 살아있을 때 구원을 보지도 못했고요. 하지만 그게 그의 전부였을까요? 그를 그답게 만들어준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요?
오늘 축일을 맞이한 성 바실리오와 성 그레고리오 주교님도 그러했습니다. 당신들 스스로 뭐 대단한 업적을 이뤘다고 말할지 않을 겁니다. 시대 속에서 순응했으니까요. 우리도 비슷합니다. 실생활에서 대단한 것을 이루지 못하거나, 살아있을 때 원한 것을 얻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덧없는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앞서 말씀드린 데로, 이들 모두는 주님 안에서 고요히 있으면서 자신이 무엇을 해야할 지를 알았기에, 보통 사람들이 칭하는 칭찬, 업적 등에 관심없습니다. 오히려 본인이 뭘 해야 할지 알았기에 행복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행복하게 살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고요한 가운데 침잠하면서 내가 무얼하는 사람인지를 살펴보십시오. 그럴 때, 누구도 할 수 없는 것을, 내가 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기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