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공현 대축일 후 화요일. 1요한 4,7-10;마르 6,34-44
많은 분들이 기도를 하지만 한편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안타까운 감정이 듭니다. 왜냐하면 바라는 것이 이뤄지기 위해서 다수의 분들이 그 출발점을 그저 나의 입장이나 인간적인 마음에서부터 출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다보면 대단히 피상적인 기도가 되고요. 그 기도를 들어주시려는 하느님의 마음을 읽지 못하기에, 시간은 들이지만, 될 것이 안되는 기도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교회는 기도를 가르칠 때, 제일 먼저 어떤 것부터 일러주었는가 하면, 바로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하느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주셨는가?, 나를 통해 어떤 것을 베푸시고 계셨는가?” 이 점을 먼저 파악해야만 나를 통해, 나만이 얻을 수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나를 통해’ 는 남과 다른, 개별적이고도 특별한 은총을 일컫는데요. 이런 이야기가 오늘 말씀을 통해 나왔습니다.
독서는 이렇게 시작되었지요.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을 압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제대로 알아듣는 이라면 이런 것을 간파할 수 있지요. ‘내가 바라는 것을 과연 하느님도 바라는 것일까?, 나만 용쓰면서 바라는 것은 아닌가?’ 란 질문에 대응할 수 있게 됩니다. 즉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먼저 알아야 가능한 이야기라 하겠습니다. 그러면서 그 사랑은 복음을 통하여 현실적으로 이뤄집니다. 5천명을 먹이신 기적을 통하여 ‘자기만 생각하던 사람’, ‘이건 현실적으로 어렵다’ 라고만 여긴 것을 현실로 이루시는데요. 여기에는 이런 것이 깔려있지요.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에게도 믿는 하느님은 있었지요. 하지만 방황하고 헤매는 모습이 보입니다. 예수님이 이런 감정이 드신 것은 바로 오늘날의 상황과 비슷하다고 하겠습니다. 이른바 ‘다들 뭔가 하긴 하는데..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를 보신’ 것인데요. 그래서 우린 하느님의 사랑의 속성과 방향을 먼저 봐야 할 필요성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대다수가 노력은 하지만, 만나야 할 방향을 못보면서 달려가고요. 막연히 기적으로만 보이는 사랑이 어떻게 현실적으로 가능할 수 있는 지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인데요.
그러기에 우린 먼저 하느님의 생각을 읽어야 하겠습니다. 우린 그동안의 시간을 통해 터득하고 배운 것이 있습니다. ‘그래... 하느님은 이런 분이시지.. 당신은 이런 것을 원하시지...’ 이런 것을 어느 정도 압니다. 그러기에 하느님을 더 알다보면 내가 하고 있는 기도란 것이 헛된 것을 원하고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진정 하느님도 원하고, 지금의 시대도 원하고, 나도 원하는 지가 보일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