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2주간 화요일.

2018. 12. 10. 오후 11: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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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2주간 화요일. 이사야 40,1-11; 마태 18,12-14

  기도를 시작할 때 제일 먼저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렇지요. 바로 성호경입니다. 성호경(聖號經), 말 그대로 거룩한 이름을 부르면서 십자가를 그으며 하느님, 예수님, 성령을 부릅니다. 왜 부릅니까? ‘주님을 소리내어 부르면서 나의 신앙을 살리기위해서지요. 그러면 그렇게 그분을 불렀다면, 이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그렇지요. 당신처럼 살아야 하지요. 가르쳐주신대로요.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이유는 뭘까요? 그렇게 매번 당신을 부르지만 실제로는 무엇이 그분과 멀어지게 만들고 있을까요? 우린 이걸 봐야 하는데요.

  유대인 철학자 중에 한나 아렌트라는 여성 철학자가 있습니다. 이 사람은 독일의 유명한 철학자 하이데거를 흠모하면서 그에게서 생각하는 법(사유)을 배웠지만, 하이데거가 독일 나치에 입당하면서 변하자, 그녀는 살기위해 프랑스를 거쳐 수용소를 탈출하여 미국으로 망명합니다. 2차 대전이 끝난 후, 마치 전두환을 광주에서 재판받게 하듯, 유대인들은 유대인 대학살의 실무 책임자인 아이히만을 유대인의 심장인 예루살렘에 세우는데요. 재판을 받는 이곳에 한나 아렌트도 파견을 가서 그 광경을 직접 목격하고 나중에 신문에 기고하고 책까지 씁니다. 하지만 문제는 쓴 내용이 같은 유대인들이 듣기에 매우 거북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엄청난 비난을 받습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논리적인 이유가 있었는데요. 그 이유란, 독일 정부가 유대인들을 모으고 가둘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세계 곳곳에 살던 유대인들의 협조가 있었기 때문이란 사실이었습니다. 마치 일제시대 친일파들이 일본 경찰에게 독립군을 고발했던 것처럼 친독일파 유대인이 구체적인 정보를 밀고했기에, 체계적으로 한데 모아 각각의 수용소로 보낸 것이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아이히만은 재판정에서 자기는 그저 상부가 시키는데로 했을 뿐이라 말하였고, 정신적으로도 정상이었습니다. 동족을 밀고한 유대인들도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는 데에 그녀는 주목하면서, ‘은 뿔 달린 괴물이 저지르는 것도 아니요, 사이코패스 같은 사람이 하는 것도 아닌, 그저 아무 의식과 생각없이 도덕적, 윤리적, 양심적 가책없이 그저 자기 한 몸 살기위해 어마무시한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것이 사람이라는 사실을 그녀는 발견합니다. 그래서 그 책의 부제가 악의 평범성입니다. 다른 이의 처지를 생각할 줄 모르는 생각의 무능은, 말하기의 무능을 낳고, 행동의 무능을 낳는다는 건데요.

 우리가 성호경을 긋고 부르면서 당신을 찾고, 오늘 독서와 복음에도 그분께서는 새끼양들을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신다.”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라며 주님은 늘 우릴 찾고 부르시지만 우린 내가 필요할 때마다 당신을 잊어버리는 무서운 망각의 증세가 있음을 발견합니다. 중요한 것은 내 인생인데 하느님의 부르심을 못듣고 내 처지를 제대로 생각못한다면 얼마나 불행할까요? 생각하지 않는 인간은 악이 될 수있는데요. 실로 우린 무엇을 기억해야 할 지 봐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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