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4주일.

2018. 12. 22. 오후 2:49:46

글자

대림 4주일. 미카 5,1-4; 히브 10,5-10; 루카 1,39-45

  대림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항상 그랬듯이 기도를 하고자 초를 켰습니다. 오늘의 초는 마지막, 4번째 하얀색 초입니다. 불을 밝혀서 가만히 심지에 갖다 대었습니다. 심지로 옮겨진 불은, 처음에는 심지를 태우다가 이내 불이 작아집니다. 아무래도 처음 켜게 되는 새 초는 심지가 길지요. 그 긴 심지 때문에 처음에는 자기 힘으로 불을 지속시키려 애쓰지만, 이내 불이 작아질 수 밖에 없습니다. 더 이상 태울 것이 없기 때문이지요. 그러다가 초의 첫 부분과 만납니다. 초를 만나자, 작았던 불이 다시 타오르며 정상적인 불꽃의 크기를 보여주는데요. 제가 왜 이렇게 길게 말씀드리는 지 아십니까? 초가 켜지는 과정과 우리들의 모습이 닮아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가진 안간힘과 노력을 가지고 받은 불을 밝혀봅니다만, 단지 심지만 태울 뿐, 그것을 계속 태울 수 있는 연료가 없기에 이내 사그러집니다. 하지만 파라핀, 밀납 등의 연료와 만나면 이내 그 불빛을 유지시킵니다. 이처럼 우리도, 가지고 있는 연료를 만나야만, 내가 원하는 크기의 불을 타오르게 만들고 유지시킬 수 있는데요. 그 연료란 바로 우리들 자신입니다.

  오늘 말씀이 그런 것들을 알려주었습니다. 1독서는 말하지요. 너는 유다 민족들 가운데에서 보잘 것 없지만,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가 너에게서 나오리라 우리가 기다려왔던 구세주가 다른 어디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을 통하여 온다는 예언입니다. 사실 우리 자신을 보자면 보잘 것 없지요. 부족해보입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하시겠답니다. 왜 그럴까요? 그 답을 하기에 앞서, 먼저 기쁨의 현장을 보겠습니다. 복음과 2독서에도 여전히 기쁨의 소리가 이어집니다. 엘리사벳은 성모님의 인사말을 듣자, 성령으로 가득 차 큰소리로 외칩니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그저 목소리 하나 들었을 뿐인데, 그 소리가 자기를 움직이게 하고, 태 안의 아이마저 노는 현장을 그녀는 경험합니다. 마치 좋은 사운드의 음향이나, 기가 막힌 화성을 가진 음악이나 멜로디를 접했을 때, 나도 모르게 소름이 돋는, 이른바 닭살이 생기는 것처럼 털이 곤두서는 느낌은, 그야말로 놀라움과 황홀의 경지로 빠져들게 하는데요. 그것이 결국 무엇을 통하여 이뤄집니까?바로 우리가 가진 몸을 통해서 경험이 이뤄집니다. 2독서에 나오지요. 당신께서는 재물과 예물을 원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저에게 몸을 마련해주셨습니다.... 이 뜻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단 한 번 바쳐짐으로써 우리가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이 주신 몸뚱아리를 통해 그 구원이 시작되고 이뤄지는데요.

  여기서 우린 이런 것을 알게 됩니다. 단지 머리로, 생각으로 신앙생활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미 여러분은 생각으로는 성인군자입니다. 하지만 고해성사를 통해 여러분도 알고 계시듯, 우리의 행동이 생각처럼 뽑아져 나오지 않습니다. 이것은 운동이나 예술을 하는 사람도 그렇습니다. 머리로는 이렇게 던지거나 치면, 예상된 궤적의 공이 나온다고 압니다. 생각으로는 이런 멜로디가 나와야 한다고 예상하지만, 실제로 그런 공을 던지거나 치는 사람은, 나 자신의 몸을 움직이고 도구를 잘 사용해야만 그런 모양이 나오지요. 아무리 생각으로 멜로디를 흥얼거려 보지만, 결국 가진 성대로, 악기로 연주하지 못한다면, 악보로 그려내지 못한다면, 결국 그건 생각으로만 묻히듯이 말이지요. 이제 이런 것을 알게됩니다. 주님께서 굳이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신 이유도 이런 것을 알려 주시려는가 봅니다. 일부러 한계가 많은 부족한 인간의 몸으로 태어났지만 그 몸을 통하여 임할 때, 우리의 삶은 평범함을 넘어선 기적을 만날 수 있다.’ 는 사실을 알게 해주시려고 말입니다.

  사랑하는 상도동 본당 교우 여러분

결국 우리는 주님께서 주신 정신과 몸으로 당신의 뜻을 실현시키는 사람들입니다. 그러기에 생각만 있다거나, 마음만 품지 마십시오. 그 좋은 생각과 의도도 결국 자신만이 가진 몸으로 풀어낼 때, 그 방식은 세상 유일한 나만의 방식이 될 것이고요. 이는 자랑스러워 할 만할 일이 될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아기의 좁은 몸으로 시작하셨지만, 그것을 통하여 세상의 구원을 이루신 것처럼, 우리도 우리가 가진 이 몸을 통하여 세상을 잘 헤쳐 나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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