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5주간 금요일.

2019. 2. 14. 오후 11:3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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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5주간 금요일. 창세 3,1-6; 마르 7,31-37

  살면서 우리를 흔들어대는 것을 무엇일까요? 그럴 듯하게 보이거나 들리는 것에 현혹되기 쉽구요. 믿고 싶은 것만 믿고픈 마음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겠습니다. 간혹 이미 세례를 받은 분들 중에서도 있습니다. 내가 이미 세례명도 있는 신자지만 솔직히 하느님이 없는 것 같다.’ 라고 여기는 경우입니다. 사실 내 주변 사람 중에서 하느님이 계신지, 안 계신지에 대해서 신경 쓰는 사람도 없구요. 신앙을 거부하고 살아도, 별 탈없다고 여겨지기에 그 확신은 그럴듯하게 여겨질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믿고 싶은데로, 내가 생각한대로 살아도. 당장에는 문제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과연 결말도 그러할까요? 과연 뭐가 문제일까요?

오 늘 창세기의 하와가 그런 경우에 해당됩니다. 분명 그녀는 하느님에게서 가르침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뱀이 간교하게 파고듭니다. “하느님께서 너희는 동산의 어떤 나무에서든지 열매를 따먹어서는 안된다고 하셨다는데 정말이냐?” 없는 말을 지어냅니다. 그러자 하와가 대꾸를 합니다.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를 먹어도 된다.” 하지만 여기서 없던 이야기를 지어냅니다. 그러나 동산 한가운데에 있는 나무 열매만은 죽지 않으려거든 먹지도 만지지도 마라하고 말씀하셨다.” 우린 이미 이 내용을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이 먹지 말랬지, 언제 만지지도 말라고 하셨습니까? 그랬던 적이 없지요. 여기에 뱀이 유혹을 더 강력하게 밀어부치자, 이젠 다르게 보입니다. 그 나무열매는 먹음직하고 소담스러워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슬기롭게 해줄 것처럼 탐스러웠다.” 여기서 여러분은 무엇이 보이십니까?우리가 생각보다 팔랑귀라는 상태를 인정하게 됩니다. 뭔가 확신이 있는 믿음, 근거가 있는 믿음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라, 남이 얘기해준 하느님, 체험이 없는 믿음이라면, 여지없이 그 영혼은 흔들리고 마는데요. 문제는 이것이 얼마나 문제인지 본인이 자각하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복음에는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고치시는 장면입니다. 여기서 주의깊게 볼 사항은, 장애인 스스로 예수님께 다가간 것이 아니라, 옆의 사람들이 그들을 이끌고 주님께 데려갔다는 것을 보게됩니다. 진정 병들거나 아픈 사람들은 본인이 얼마나 아픈지, 병들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생각보다 우리 주변에 그런 분들이 많습니다. 이를테면, 자기만의 세계관에 갇혀있는 사람들입니다. 아무리 말해줘도 모릅니다. 믿고 싶은데로 믿고 있고요. 자기 생각을 계속 부풀리면서 문제의식조차 가지지 못합니다. 그런 이들이 우리 곁에 있다면 분명 그냥 둬선 안됩니다. 도와줘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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