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3주간 화요일.

2019. 1. 28. 오후 8:3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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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3주간 화요일. 히브 10,1-10; 마르 3,31-35

  며칠 전 청년들과 복음 나눔에서 나온 이야기를 잠시 소개하겠습니다. 원래는 비밀이 보장된 자리였지만 여러분과도 공감되는 내용이라 여겨져서 그 청년에게 양해를 구하고 허락을 얻었기에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짧게 요약하자면 내용은 이렇습니다. 회사에서 업무상 다른 회사직원들과 만나는 경우가 있는데 일로써만 만나기에 그 안에는 서로 경쟁과 계산과 이득을 얻으려는 만남이기에 매번 지치고 피곤함을 느끼고요. 그러다 주일이 되면 잠시 교회에 나와서 어려움을 달래보지만 다음날부터 또 다시 이어지는 원치 않는 만남은 사람을 지치게 만들고 삶의 퍽퍽함을 느낀다 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저도 가슴이 아팠습니다. 매번 만나는 자리는 자신이 소진되는 현장처럼 들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이런 질문을 던져보았습니다. 아직 여러분이 그 자리에 앉아본적이 없기에 이해가 잘 안될 수 있지만 만약 본인이 그 회사의 사장이라면, 상대회사의 직원을 어떻게 대했을까요? 내가 만든 회사라지만 다른 업체의 물건과 자재를 받으며 운영해야 내 회사도 살리고 직원에게 월급도 줄 수 있는데요. 내가 사장이라면 상대회사 직원들을 어떻게 만날까요?’ 순간 별 말이 없었습니다. 아직 사장님이 되어본 적이 없어서 그런 지, 간혹 나온 대답은 배려가 필요하다, 사랑이 필요하다 라고 말하지만 그 말엔 힘이나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왜 길게 말씀드렸는지 아십니까?

  오늘 독서와 복음의 내용이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그 청년과 비슷합니다. 우리가 신자로 사는 이유도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기 위해서 이지요. 하지만 세상은 내 생각과 다르게 흐릅니다. 내가 주도권이 없기에 열의가 식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현실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아야 합니다. 하지만 다수의 분들이 잘 모르겠다. 어렵다 를 이유로 그분의 뜻을 찾는 과정을 중도포기하거나 다시 예전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면서 악순환은 반복되지요. 여기에 예수님이나 히브리서 저자처럼 살려면 필요한 조건이 있습니다. 그 조건은 교회적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럼 교회 안에는 무엇이 자리잡고 있는지 알아야 하겠지요. 바로 성령입니다. 하느님의 영, 예수 그리스도처럼 생각하는 자세가 먼저이겠지요. 제가 '곽희태' 라는 어떤 개인의 마음으로 교회안에서 살면 많은 사안에 대해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겠지요. 단순한 개인의 이익을 넘어서 살 때, 삶의 근간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고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있을텐데요. 앞서 내가 사장님이라면..’ 이란 예를 든 이유도 그렇습니다. 요즘 뉴스에는 사장님들이 갑질이나 하고 사익을 추구하는 것처럼 나오지만 대다수 사장님들은 오늘도 직원들의 월급을 맞춰주고 채워주기 위해 열심히 일을 합니다. 이렇듯 나의 신앙생활도 개인적인 내가 뭔가를 하는 것만이 아니라, 교회적으로 공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뭔가 다른 방법을 모색할 수도 있고요. 자신뿐만 아니라 남도 살릴 수 있는데요. 그럴 때 하느님의 뜻이 이뤄집니다. 여러분도 단순히 교회를 이용하기보다 하느님처럼 생각해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삶의 시각도 달라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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