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8주일.

2019. 3. 2. 오후 2:40:59

글자

연중 8주일. 집회 27,4-7; 1고린 15,54-58; 루카 6,39-45

  여러분은 행복하십니까? 여기에 우리가 모인 이유는 행복하기 위해서지요. 그래서 바쁜 시간을 할애하며 오신 것 아니겠습니까? 요사이 나오는 책이나, 많은 정보에는 사람들이 원하는 행복을 얻고자 이렇게 말합니다. 너 자신을 믿어라, 너 자신 안에서 행복의 샘을 발견해라,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헌데 과연 그렇게 하면 행복해집니까? 너 자신을 믿으라는데, 내가 얼마나 믿을만한 사람인지 확신하십니까? 자신 안에서 행복의 샘을 발견하라는데, 내 안에 그런 샘이 어느 정도나 있는지 알아야 할 것 아닙니까?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는 의도는, 괜히 앞선 말에 토를 달면서 반론을 제기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행복을 얻으려면 실제로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실제로 내가 지켜야 할 것들을 이행하면서 완전한 모습이 되어갈 때, 행복을 얻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사탕 발린 몇 마디의 말로 행복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이런 말씀을 들었습니다. 좋은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가끔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곤 합니다. 좋은 스펙과 경력을 가진 인물이, 좋지 않은 인성(人性)과 불성실한 행동을 보이곤 하고요. 교육을 많이 받고 똑똑하지만 오히려 윤리적으로 문제되는 사건을 터뜨립니다. 사실 이런 문제가 생기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란, 사람이 만든 인간의 법 위에 존재하는 자연법을 소홀히 하면 그렇습니다. 자연법의 정의는 이렇습니다. 지성적 창조물 안에 있는 영원법에 대한 참여이다.” 우리는 지성을 가진 하느님의 창조물이고요. 여기서 말하는 영원법은, 만물을 통치하는 하느님의 계획이라 하겠습니다. 하느님의 계획은 우리를 더 선한 방향으로 인도하시고요. 그 방향으로 갈수록 하느님을 만나며 흔들리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즉 사람이 만든 법 위에 존재하는 최고의 법이고요.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보편적인 법이구요. 인간 내면에 항상 잠재된 법입니다. 이는 우리가 가진 양심을 통해서 모두가 알 수 있고요. 자연법에 근거한 윤리적인 여러 의무를 이행하면서 얻게 됩니다. 비록 수고로움이 동반되긴 하지만, 한편으로 그것을 하면서 참된 자유를 얻게 됩니다. 하지만 의무의 수고로움을 피하려고만 든다면, 처음에는 만족을 주지만 그 순간부터 불행에 빠지게 되고요. 여기에서 탈출하고자, 더 안 좋은 선택을 하면서 결국 노예의 상태가 되는데요. 여기에 예를 들겠습니다. 다 아는 내용입니다만, 실제로는 다르게 생각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낙태에 대해서는.. 내가 원한다면 낙태를 할 수 있어.’ 인공수정에 대해서는.. 아이를 가지려면 비록 다른 수정란들을 희생시키더라도 해야 돼.’ 이혼에 대해서는..만일 두 사람이 원치 않는다면 이혼을 허용하고 새롭게 살도록 허용해야 돼.’ 동성애에 대해서는..서로 좋아한다는데 동성끼리 하는 성관계가 무슨 죄야?’ 마약에 대해서는..남에게 해를 끼치는 것도 아닌데 왜 문제가 되지?’ 라는 말을 천주교 신자들 속에서도 심심찮게 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런 말을 서슴지 않고 말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란, 우리의 생각이 정당한 것인지 아닌 지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하에서 나오지는 않았다는 점입니다. 좀 그럴 듯하게 들리거나, 정확한 판단 없이 남의 영향을 받아 그리 된 것이지요. , 앞서 거론된 예들은 다 아는 내용들입니다. 하면 좋지 않다는 것을요. 하지만 정작 이것이 내 문제가 될 때는, 얘기가 달라집니다. 앞서 들었던 예들은, 이것을 이행할수록 인간의 삶의 질에 해악을 끼친다는 것은 다 압니다. 그리고 이를 법으로 명시하면서 지켜야만 평화로운 세상이 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 문제가 이제 내 문제가 된다면, 이제 얘기는 다르게 흘러가면서 국가에 대해 이렇게 요구합니다. 생명을 지켜야 한다는 보편적인 의무는 인정하지만, 한편으로 고의적인 임신중절을 허용할 수 있도록 요청한다.’ 다시 말해서 아직 태어나지 않은 무죄한 어린 아기를 죽이지 말라는 자연적인 법은 인정하지만, 그렇게 죽일 수 있도록 허락하는 법률적 장치는 마련해달라..’ 얼마나 상반된 말을 하고 있습니까? 우린 그런 인간적 한계를 가졌습니다.

  사랑하는 상도동 본당 교우 여러분

  우린 완벽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진 양심만 해도 그렇습니다. 나의 양심이 말하는 모든 판단을 과연 올바르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불행히도 아닙니다. 우린 항상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내가 잘 만나는 사람들, 매일 듣고 보는 언론 기사와 뉴스보도, 우리를 자극하고 유혹하는 여러 충동들.. 매일 듣고 접하는 사안들이 내 취향에 맞춰 돌아가다보면, 오히려 우리의 양심을 부패하게 만들고, 자연법에 근거한 원칙을 어기는 상황이 발생됩니다. 그러기에 각자 양심의 자유를 말하기 앞서, 양심이 실수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이를 평소 관리해야만, 하느님이 말씀하시는 것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는데요. 2독서에 이런 말씀이 나왔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언제나 주님의 일을 더욱 많이 하십시오. 주님 안에서 여러분의 노고가 헛되지 않음을 여러분은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을 어떻게 관리해 가십니까? 당신이 만드신 모든 법을 초월하는 자연법을 통하여 하느님 마음에 더 가까이 가야 하겠습니다. 사실 우리는 이런 자세가 필요합니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