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1주간 수요일. 이사야 55,10-11; 마태 6,7-15
우린 늘 새로운 것에 목말라 합니다. 내 삶에서, 각종 모임에서, 길을 가다가,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그렇습니다. 이른바 심심한 것을 견디기 어려워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늘상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고요. 보지도 않고 듣지도 않으면서 tv나 라디오를 켜놓습니다. 교회에 다니면서도 뭔가 대단한 이슈적인 것을 다루길 기대합니다. 하지만 오늘 여러분이 들으신 말씀은 그런 우리들의 기대감을 죽이는 듯한 인상을 받습니다.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 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사람의 아들도 이 세대 사람들에게 그러할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이겠습니까? ‘요나가 3일간 물고기 뱃속에서 죽어지냈듯이, 나 예수도 그리될 것이다. 그리고 나중에 너희도 이렇게 될 것이다.’ 이런 뜻이지요. ‘다 이렇게 되어야 한다’ 는 말씀이 불편하고요, 재미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동안 배워왔던 가르침이 그런 것들이었습니다. ‘주님을 따르려면 모든 것을 버리고 따라야 한다.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한다. 감각을 정화하여 자신의 집착을 내려놓아야 한다’ 등의 가르침이었지요. 하지만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남의 말을 듣기보다는 나의 말을 더 늘어놓으며 강요하고요. 내가 한 이야기가 현실에 반영되길 바라고요. 사람들이 나를 우러러 보길 바라는 면이 있습니다. 이른바 자신을 죽이기보다는 어떻게든 드러내고 싶어 안달난 사람처럼 살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우린 가끔 확인해봐야 합니다. 하느님을 향한 여정 중에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지를요.
4세기경 사막을 살았던 교부인 에바그리우스 폰티쿠스는 8가지 악한 생각을 정리하였고요. 이것이 나중에 7죄종의 기원이 됩니다. 8가지 악한 생각의 시작은 탐식, 즉 배를 채움으로 시작됩니다. 탐식은 음란한 생각을 낳고요. 그것이 탐욕으로 이어집니다. 하지만 그것이 현실적으로 다 채워지지 않기에 슬픔, 분노, 무기력을 낳고요. 결국 허영심과 교만까지 이르는 과정을 알려줍니다. 우린 나도 모르게 발생되는 것들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럴 때만이 니네베 사람들이 하느님께 마음을 돌리는 회개를 우리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