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수난 성지주일. 다해
여러분은 무엇을 바라셨기에 여기에 오셨습니까? 무엇을 얻기 위해 오셨습니까? 그래요. 들으신 그대로입니다. 아무 것도 없어 보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여러 능력을 보고서 그분을 떠받들었습니다. 병도 고쳐주시고, 기적도 보여주시고, 권위 있는 가르침도 알려주시고...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처절한 모습만 보입니다. 미사 초반,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여러분도 하신 것처럼, 들고 있던 나뭇가지를 흔들어대며 격렬하게 환호하고 반응했지만, 이젠 누구도 보고 싶어하는 모습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것이 그분의 바랐던 구원방식이었습니다. 이미 구약성경을 통해서 여러 번 예언되었던, 바로 ‘고난을 받는 주님의 종’ 의 모습입니다. 여러분은 이해가 되십니까? 이 불편한 진실을 어떻게 보시렵니까? 받아들일 감당이 되십니까?
이 상황을 바라보는 다양한 사람들의 반응이 보입니다. 베드로는 “주님과 함께라면 감옥에 갈 준비도 되어있고, 죽을 준비도 되어있습니다.” 라고 다짐하지만 결국 세 번이나 그분을 모른다고 대답하고요. 유다는 주님을 팔아넘기고 돈을 얻습니다. 율법학자들은 자신들의 권위와 자리를 지키려고 무고한 주님을 고소하여 넘기고요.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총독 빌라도는, 유다인 관할 소속인 헤로데에게 넘겨 실컷 놀림감으로 만들어 버리고는, 죄가 없다는 것을 알지만 민심이 흉흉하고 사회의 혼란을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대신 살인자를 풀어주고는 그분을 죽이는데 찬동합니다. 그렇다고 지금의 이 사회도 다르지 않습니다. 진짜 죄 있는 사람을 잡기보다는, 오히려 이슈를 이슈로 덮어버리면서 진정 벌을 받아야 하는 사람을 잊도록 만드는데요. 무능해 보이는 당신을 희생양으로 삼으며 이 사건을 빨리 종결시키려 합니다. 그러면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무마하려 하지요.
당신은 기도합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 지 모릅니다.”과연 우린 무엇을 몰랐을까요? 시간이 지나며 결국 증명되었습니다. 실패했다고 여긴 주님은 영원한 승리의 삶을 사셨고요. 성공했다고 여긴 그들은 결국 간사한 삶을 살아간 역사의 패배자였다는 것을요. 우린 무엇을 얻고 싶습니까? 참된 것을 얻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요? 당신의 희생방식을 바라보며 답을 얻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