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5주간 수요일
우리는 믿음의 시간을 갖고 지냅니다. 가르침을 받은 범위에서 살아가지요. 하지만 실상은 ‘과연 이 문제를 어찌 풀어야 하는가?’ 하는 잘 모르겠고 알쏭달쏭한 문제에 직면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제일 빠른 문제는 일단 물어보는 것이지요. 신부님이나 수녀님께요. 하지만 이분들이라고 항상 답변을 올바르게 다 잘 알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즉 개인적인 사견(私見)이 들어갈 수도 있고요. 그 분만의 특정한 생각일 수도 있습니다. 당연히 신자들 입장에서는 더 혼란을 맞이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린 ‘교회의 생각’ ‘교회의 입장’을 봐야 합니다. 미사 경본에도 나오지요. 주님의 기도 후에, “저희 죄를 헤아리지 마시고, 교회의 믿음을 보시어” 라는 부분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교회의 믿음’ 이란 보편된 교회를 말합니다. ‘어느 한 지역이나 사정에 편중된 교회’ 가 아닌 하느님이 세우신 전 민족의 보편된 교회의 믿음과 입장을 말합니다. 개개인의 부족함을 상쇄시켜주는 그런 교회를 말하지요.
오늘 독서에 “사도들과 원로들은 이 문제를 검토하려고 모였다.” 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당시로서는 유대인의 옛 계약인 ‘모세의 관습’ 과 ‘예수님의 구원방식’ 이 당장에 충돌하여 혼란을 겪던 시기였기에 이를 해결코자 서로가 모여 보편된 방식을 찾으려 합니다. 복음에 예수님도 말씀하시지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우리는 우리에게 닥친 문제와 어려움을 주님을 통해 현실적으로 극복하기 위해 교회를 통해 해결해 가야 하는데요. 그래서 이런 말이 있지요.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 이 말은 성 아우구스티노의 제자 플젠시오에 의해 400년대에 제정되어 1442년 플로렌스 공의회에 의해 엄격히 선포되어 지금에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즉 ‘교회인은 아무리 많은 목숨을 위해 자신을 목숨을 바쳤다 해도 그가 가톨릭 교회의 품 안에 일치해 있지 않으면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다’ 는 말이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말의 뿌리인 셈입니다. 물론 믿지 않는 이들은 하느님의 다른 방식을 통해 이끌어주실 것입니다. 하지만 우린 그들과 다르지요. 이미 세례를 받았으니까요. 그렇다면 교회의 방식으로 일을 해결해가야 하는데요.
자 이젠 우린 이런 질문을 만납니다. ‘누가 구원을 받는가?’ 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구원에 이르는가?’ 가 관건이라는 것을요. 정답은 이것이죠. ‘오로지 교회의 활동을 통해서 이웃 사랑 안에서 만나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입니다. 큰 범위 내에서 답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