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0주간 금요일.
여러분은 기도하면서 느껴지는 것이 있습니까? 기도하는 중에서 벌어지는, 수 없이 떠도는 감정에 휩싸이십니까? 아니면 조용하게 무탈하십니까?뭔가 목적의식을 갖고 비는 분들이라면 아실겁니다. 몸에, 정신에 대단히 힘이 들어가면서 힘들다는 사실을요. 하지만 흘러가는 물에 몸을 맡기듯, 그렇게 기도하는 분들이라면 비록 종착지가 어디인지 당장엔 안 보이지만 편안히 흘러가신다는 사실을 아실텐데요.
사막의 수도자인 에바그리우스 폰티쿠스는 말합니다. ‘모세도 발에서 신발을 벗기 전까지는 불타는 덤불속의 하느님을 만나지 못했네. 만일 그대가 모든 인식과 개념을 초월한 분을 보고 교감하고 싶다면, 나를 움직이고 있는 온갖 생각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하지 않겠나?’... 여기서 말하는 모세가 신었던 신발이란 이런 뜻이겠죠. 신발을 신으면 어디든 갈 수 있습니다. 사막에서 이것만큼 필요하고 확실한 게 없어보이지요. 그래서 어떻게든 그 신발을 신으려 할 것이고, 신발이 없으면 안된다고 여길 것입니다. 하지만 그 신발마저 벗을 때, 현재 나를 휘감고 있는 것이 무언지를 알고요. 이를 떨어내야만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다는 얘기인데요. 그래야만 평안함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 빌어보자면 그 신발이란, ‘음욕’ 이겠구요. 독서에서 보자면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우리 몸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처럼 예수님의 죽음이란, ‘자기를 드러내고 싶은 욕구, 원하는 것을 이루고자 하는 욕망, 자랑 등’ 일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처럼 이것마저 죽여낼 때, 당신이 이루신 참다운 부활과 생명의 삶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인데요.
그렇습니다. 우린 늘 경계하고 조심해야 합니다. 욕심, 욕구가 나를 죽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허상을 좇는 불나방처럼 그렇게 달려들다가 자기 몸이 잿더미가 되는 지도 모른 채 죽어가듯, 욕망에 휘말리다보면 우리는 삶의 중심을 잃어버리고 방황하게 되는데요. 그래서 알렐루야에서도 노래하지요. “이 세상에서 빛나도록 너희는 생명의 말씀을 굳게 지녀라” 무릇 하느님과 가까워지고, 기도를 잘하고, 자기 자신을 정돈하려면, 그 첫 시작은 내가 가진 욕망에 메이지 않고 휘둘리지 않는 일일 것입니다. 이것만 조절할 줄 안다면 반 이상은 이룰 수 있는데요. 하지만 다수의 분들이 이게 안 되서 시간을 허비하고 인생을 낭비하시는데요. 여러분 자신을 메이게 만드는 그놈을 잘 보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