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수도자 기념일

2019. 6. 21. 오후 4:53:03

글자

성 알로이시오 곤자가 수도자 기념일

  모두가 행복, 기쁨을 얻고 누리길 바랍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헌데 행복이나 기쁨에도 크기나 깊이 면에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요. 이른바 큰 기쁨이냐? 소소한 행복이냐?. 요즘 사람들의 경향은 소확행.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입니다. 일단 경기도 좋지않고 불안하고요. 미래도 예전보다 불투명해졌으니까요. 하지만 그리스도교가 예전부터 말해왔던 참된 행복은 소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큰 행복이죠. 여기서 차이를 알아야만 하는데요. 일단 소소한 행복은 변화가 필요 없고 큰 노력도 바라지 않습니다. 지금 있는 선에서 바꾸지 않고 적절히 타협하면서 어느 정도 만족하면서 사는 겁니다. 하지만 큰 기쁨은 다르지요. 이걸 얻으려면 희생이 필요하고요. 중간에 상처를 입기도 하고요. 몸과 마음의 변화와 변형도 오는 것을 감수해야 합니다. 마치 도를 구하는 구도자나, 예술가나 운동선수처럼 기술을 익히려고 부상과 뼈가 휘어지기도 하는 변형을 감수해야 합니다. 그래야 얻을 수 있으니까요. 여기서 대부분 사람들은 겁을 집어먹지요. 그래서 안하려고 합니다. 편한 것만 찾습니다. 그렇게 몇 십년이 지나면 본인 자신에게 무어라 말할 것 같습니까? 전 그런 분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은퇴하신 분입니다. 여담을 나누다가 이런 말을 툭 내뱉습니다. 저도 예전에 볼링, 골프, 당구, 낚시 등을 많이 해봤어요. 그런데 제대로 할 줄 하는 것 하나도 없어요.’ 뼈를 때리는 이 말을 들으며 저도 다짐을 했지요. ~ 인생은 재미를 찾으며 살면 안되는구나. 제대로 하려면 뭔가를 줄이고 절제하며 깊숙이 파야하는구나

  오늘은 알로이시오 곤자가 수도자 기념일입니다. 이 분은 태생이 귀족가문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금수저 자리를 포기하고 예수회에 들어가 환자들을 돌보다 성인이 됩니다. 무엇을 봤기 때문에 그는 기득권을 버렸을까요? 복음에도 나오지요. 눈은 몸의 등불이다. 네 눈이 맑으면 온 몸도 환하고 네 눈이 성하지 못하면 온 몸도 어두울 것이다.” 그야말로 뭔가를 보는 안목과 시야와 자세가 잡혀 있어야 하는데요. 독서에 나온 바오로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선교하면서 개고생(?)을 한 체험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지치지 않고 좌절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약함을 자랑하겠다 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진정 우리가 가져야 할 것이 무엇인 것 같습니까?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