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1주간 수요일

2019. 6. 19. 오후 3: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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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11주간 수요일

  여러분은 자기답게살고 계십니까? 이정도의 연령과 경험, 삶에서 농축되어 빚어진 여러분만의 고유한 삶을 살고 계시냐는 질문입니다. 어떤 부분은 천성적인 것도 있을 것이구요. 어떤 부분은 본능적이거나 노력하여 만들어진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헌데 지금까지 그렇게 이뤄진 품성, 성격, 습성들에 대해 나만의 고유함을 잘 알고, 간직하며 마음에 들어하며 사시는가? 여쭤본 것입니다. 만약 여전히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있다면 어떤 부분이 그렇습니까? 또는 그런 부분을 보며 앞으로는 어떻게 하실 예정입니까?

  오늘 복음에 나온 사람들은 이른바 자기답게 살지 못하는 인물들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표 현이 자주 나옵니다.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칭찬을 받으려고” “위선자들처럼 드러내 보이려고 라고요. 왜 이들은 자연스러움보다 인위적이고 작위적인 삶을 선택했을까요? 그들도 그것이 자연스럽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런 선택을 한 이유 중 하나는 자기다움을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현 상태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이 보기에도 부족해보이고, 그럴 듯 하지 않으니까 이를 숨기지요. 그러면서 없는 것을 있는 척합니다. 그런데 우리도 가끔 이러지 않습니까? 어떤 부분은 창피하기에 철저히 숨기고요. 그런 것이 없는 척하고, 또는 허세를 부리며 있는 척, 가진 척을 하지요. 이른바 하느님의 눈보다 사람의 눈이 더 두려운 이들이 벌이는 행동인데요. 오늘 독서에도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저마다 마음에 작정한 대로 해야지, 마지 못해 하거나 억지로 해서는 안됩니다.” 자연스러운 것이 좋다는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 설사 부족하건, 만족하건 말이지요. 하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 않습니다. 반대로 기어이 인위적인 것을 선택하고 마는데요. 결국 우린 자연스러움이 뭔지를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내 삶이 편안해질 수 있는데요.

 자연스러움의 기준에는 이런 것이겠지요. 하느님 보시기에 합당한가? 지금은 꼭 내키지 않더라도 선한 의도인가? 나 하나에서 끝나지 않고 공동체원을 위한 것인가?’ 여러분이 믿고 따르는 이 신앙을 통하여 자기답게, 자신있게 사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남부럽지 않게, 거기서부터 행복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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