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7주일. 창세 18,20-32; 콜로 2,12-14; 루카 11,1-13
무언가를 얻으려면 제일 먼저 무엇이 필요할까요? 그렇습니다. 희생입니다. 봉헌 성가 가사에도 나오듯, 나의 삶을 드리고, 나의 마음을 내어놓는 것이지요. 안 그러면 절대 제대로 된 것을 얻을 수 없습니다. 저도 이 자리에 서기 위해 저를 죽였습니다. 서품식에서 하지요. 그냥 무릎을 꿇는 것도 아니고 아예 엎드립니다. 종신서원을 받는 수사님, 수녀님도 그렇습니다. 여기에 해설자는 이런 멘트를 합니다. ‘이제 사제품에 오를 분들은 제단 앞에 엎드립니다. 이는 땅에 엎드린 가장 비천한 자로서, 세상에 대해 죽고, 오직 주님께 봉사할 것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 분들이 받게 되는 고귀한 직무를 위해 천상 은총이 풍성히 내려지도록, 모든 성인 성녀들의 전구를 간절한 마음으로 청합시다. 교우들은 모두 무릎을 꿇으십시오.’ 그러면서 선발된 이들은 땅에 엎드리고, 모두들 성인호칭기도를 바칩니다. 모션만 엎드리는 것이 아니라 아예 내려놓아야 하는데요. 그러면 이제 여쭙겠습니다. 여러분은 하느님의 자녀로 거듭나는 세례를 받으면서 무엇을 죽이셨습니까? 저는 신부가 되면서 저 자신을 죽였기에 여러분 앞에서 주님의 말씀을 선포할 수 있는데요. 죽였기에 선포할 자격을 얻은 것이지요. 그러면 여러분은 무엇을 죽이셨습니까? 아직 죽이지 못했다면 죽일 생각은 있으신지요? 오늘 2독서는 이런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여러분은 세례 때에 그리스도와 함께 묻혔고,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하느님의 능력에 대한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과 함께 되살아났습니다.” 영화 명량의 한 대사인 ‘필생즉사, 필사즉생(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요, 죽으려 한다면 살 것이다)’ 라는 말은 그저 영화 속의 대사만은 아닙니다. 한 분야에서 제대로 된 것을 얻으려면 무엇인가를 죽여야 하는데요. 여러분도 그럴 용기와 결단을 갖추셨습니까?
1독서의 아브라함은 하느님께 아룁니다. 하느님께서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이 너무 심각하였기에 그들을 쓸어버리겠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아브라함이 하느님께 말씀을 드리는 태도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께 아뢸 때마다 이런 표현을 넣어서 말씀드립니다. “저는 비록 먼지나 재에 지나지 않는 몸이지만, 주님께 감히 아룁니다... 제가 아뢴다고 노여워하지 마십시오...제가 다시 한 번 아뢴다고 주님께서는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그는 왜 이렇게 자신을 낮추고 있을까요? 참된 진리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들이 갖춰야 할 덕목은, 바로 ‘복종할 줄 아는 자세’ 입니다. 헌데 이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분들은 이렇게 말할지 모릅니다. ‘너무 저자세가 아닌가' 하고요. 하지만 잘 생각해 보십시오. 그분과 나는 같은 선상에 있지 않습니다. 회사도 그렇습니다. 일개 사원이 생각하는 것과, 회사를 이끄는 사장님 생각이 같다면 회사가 돌아가겠습니까? 이처럼 그분과 나는 차이가 나야 합니다. ‘생명의 주인이신 분, 정의와 사랑을 펴시는 분’ 이기에, 뭔가를 말씀드릴 때 필요한 자세는 ‘겸손’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생각하는 것이, 실은 그분이 보고 있는 것보다 훨씬 식견이 짧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겸손의 자세는 필수 전제이기 때문이지요. 왜냐하면 그분은 우리보다 훨씬 큰 분이시니까요. 그런데 우리의 의견을 안 들어주셔도 상관없는 분이, 고맙게도 부족한 우리의 의견을 들어주십니다. 경청해주십니다. 이건 우리 측에서 볼 때 참 감사한 부분이지요. 그래서 아브라함은 그들을 생각하여 말씀을 올립니다. “그 안에 의인이 쉰 명이라도 있다면 그곳을 용서하지 않으시렵니까?... 마흔 다섯명이라도 있다면.. 서른 명이 있다면... 스무 명이 있다면... 열 명이라도 있다면...” 한 사람이라도 살리려는 자세를 보며, 오늘 복음에 기도 자세와 맞는 장면 두 가지가 나옵니다. 하나는, “기도를 할 때 이렇게 하여라” 하면서 7가지의 청원이 담긴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시고요. 또 하나는,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라는 장면입니다. 이 두 가지 말씀은, 앞서 아브라함의 기도와 공통된 부분인데요. 그것은 간절하고 정성어린 기도라는 점입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간절하게 기도하십니까?나의 모든 것을 다 바꾸고 내어놓으려는 태도가 담겨 있습니까? 아니면 여전히 거래성 기도에 머물고 있습니까?
사랑하는 상도동 본당 교우 여러분~
우리가 바치는 기도는 간절하고 겸손된 자세가 있어야 하지만, 더불어 필요한 자세는 이런 것일 것입니다. ‘하느님.. 제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사람이 노력은 하되, 정작 들어주시는 분은 하느님, 당신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원하는 것을 당장 얻지 못한다 하여도, 당신께 대한 신뢰와 믿음을 지켜갈 수 있게 도와주시고, 이번 기회를 통해 하느님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십시오’ 라는 기도를 한다면, 일희일비(一喜一悲) 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을텐데요. 단순하고도 담백하게 우리 앞에 놓여진 삶을 충실히 살아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