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6주간 토요일

2019. 8. 2. 오후 9:13:13

글자

연중 16주간 토요일

  이런 말들을 합니다. 기계는 고쳐써도 사람은 고쳐쓰는 것 아니다 어떤 느낌이 드십니까? 수긍하십니까? 혹시라도 변할 가능성을 염두하시나요? 저도 쉽게 단언하기 어렵습니다. 누구는 변하고, 누구는 변치 않는 것을 보는 현실이니까요. 예비자를 보며 많은 것을 봅니다. 집안의 등쌀에 못 이겨 전혀 종교적이지 않았던 이가 열성으로 차올라 변화되는 것을 보기도 하고요. 한때 열심했던 교우가 이젠 진()이 다 빠져 대단히 말라버린 것을 봅니다. 어떤 계기로 회심한 이들을 보기도 하고요. 이제나 저제나 똑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도 여러 케이스 중에 하나인데요.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과연 하느님께서 무엇을 보고 계실까? 그분이 우리를 바라보시는 관전 포인트는 무엇일까?’ 라는 사실입니다. 하느님은 우리게서 무엇을 보고 싶으시기에 우릴 계속 살려두실까요? 당장이라도 목숨을 거둬 가실 수 있는 분이 말입니다.

  독서에서 모세는 백성들에게 주님의 말씀과 법규를 알려주자, 주님께서 말씀 하신 모든 것을 실행하고 따르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부분이 3번이나 나옵니다. 하지만 우린 압니다. 그렇게 말했던 이들이 금송아지를 만들고 우상숭배를 하고, 이에 모세도 화가 나서 하느님이 주신 증언판을 내던져 깨버리지요. 이에 그 세대 사람들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복음도 비슷합니다. 한 땅에 밀과 가라지가 함께 자랍니다. 이에 대해 저희가 가서 그것을 거두어 낼까요?” 묻지만 아니다. 너희가 가라지들을 거두어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 지도 모른다.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두어라.” 하십니다. 이 말씀대로라면 지금 이곳은 밀과 가라지가 공존하는 현장입니다. 어떤 분은 저 사람 때문에 성당 다니기 싫다 합니다만 역설적이게도 지금은 그런 분이 있어야 합니다. 그럼 가라지를 통해서 진정 주님이 의도하시는 것은 무얼까요? 당장에는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이겠습니다만, 그건 우리 생각이고 그들이 그럴 생각도 없고 그럴 의지도 없다면, 결국 그들의 정체가 시간이 지나면서 더 드러날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깨달아 갈 것입니다. 저 사람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를요. 가식이었는지 아니면 오해해 왔던 것인지를요. 그러면서 주님의 선하심이 그들의 짧은 생각과 악행으로 드러날 것입니다.

 결국 시간이 흐르면서 하느님은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셨지만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자기가 선택한 결과가 무엇이었는지를 주위 사람들은 알아차릴 것이고요. 하느님의 선하신 의도와 결정은 사람들 입에 칭송되고 갈 것입니다. 마치 모세가 이스라엘 사람들을 탈출시킬 때, 파라오 왕은 반대했지요. 당장에 노예가 없어지니 싫었겠구요. 이스라엘 사람들도 거길 나오면서 반대도 했었고 비난도 일삼았습니다. 하지만 결국 나중에서야 알아차렸지요. 하느님이 계시구나.. 라는 것을요. 하느님은 결국 승리하실 것이고요, 우리도 그것을 나중에야 알아차릴 것입니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