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16주간 수요일

2019. 8. 2. 오후 8:5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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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16주간 수요일

  신학교에 가까이에 위치한 교회서적 전문 서점에 가서 책을 사곤 합니다. 요사이 교회의 트랜드도 알겸, 청년들 축일 선물을 사러 가는데요. 아무래도 가까이에 신학교가 있고, 평신도가 다니는 교리신학원도 있기에 주인에게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여기 오시는 분들은 다들 열심한 분들이겠죠?’ 그러자 이런 답변이 들려옵니다. 아휴~ 세상 사람들하고 똑같아요 이른바 시간과 돈을 들여서 신학공부를 하러 온다지만 세상의 흐름과는 그리 다르지 않다는 답변이었는데요. 사실 교우들도 이런 말을 하지요. 신부님, 수녀님들도 예전 그런 분들 별로 없어요.’ 과연 우리에겐 무엇이 필요할까요?

  오늘 독서에 사람들은 불평을 늘어놓습니다. 광야 생활이 힘들기 때문이지요. ~ 우리가 고기 냄비 곁에 앉아 빵을 배불리 먹던 그때, 이집트 땅에서 주님의 손에 죽었더라면! 그런데 당신들은 이 무리를 모조리 굶겨 죽이려고 우리를 이 광야로 끌고 왔소?” 여기에 하느님은 만나와 메추라기를 보내주시지만 먹을 만큼만 거둬들이라 는 명령을 어긴 이들도 있었지요. 오늘은 안 나오지만 뒤이어선 그것들이 썩어서 냄새를 풍기는 장면도 나옵니다. 욕심을 부린 대가이지요. 복음도 그렇습니다. 주님은 땅에 씨를 뿌리십니다. 일단 땅 상태도 잘 보지 않고 귀중하고 비싼 씨를 뿌리시지만 이를 못 받아들이는 땅의 상태가 그 씨를 죽이고 마는데요.

  이제 우리의 상태를 보겠습니다. 우린 지금을 사는 현대인들입니다. 당연히 지금의 세상 흐름과 유리되어 살 수는 없지요. 하지만 세상의 흐름이란게 항상 옳고 좋은 것도 아니고요. 자신을 객관화시켜 바라보지도 못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자기를 너무 약하게 보거나, 반대로 자기를 너무 과대 평가하기도 합니다. 마치 다 먹을 수도 없는 음식을 마트에서 사다가 냉장고에 넣지만 냉장고 안에서도 음식이 상하는 것을 많이 보곤 하는데요. 그래서 주님의 은총을 달라고 하기에 앞서, 그 은총을 받을 줄 알고 관리할 수 있는 지부터 살필 때 괜한 욕심과 헛된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시대는 한편으로 풍요롭지만 절제가 필요한 시대이고요. 절제를 통하여 나 자신을 제대로 볼 줄 아는 시간이 필요한데요. 우리가 알고 있는 주님의 기도에 이런 부분이 나옵니다.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일용(日傭), ‘하루 먹을 만큼만이란 부분을 잘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나의 그릇이 어떤 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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