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도미니코 사제 기념일. 민수 20,1-13; 마태 16,13-23
직함이 ‘신부’ 라고 남에게 저를 소개하고, 그런 호칭을 듣고 산 지도 벌써 15년이 됩니다. 한 분야에서 15년 정도 되면, 자기의 위치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 지, 명확히 알 만한 때도 되었건만, 어떤 때는 ‘과연 잘하고 있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 때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회적인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야 하는 삶이다보니,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이 올 때도 있고요. 인간적인 무력감이 닥치면 힘이 빠지는 것도 경험합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문제들을 교우들에게 티를 낼 수 없다는 것이지요. 병이 나거나, 신앙이 약해지거나, 걱정이 있어도요. 왜냐구요? 목자를 따르는 양들이 혼란에 빠지면 안되니까요. 게다가 교우들이 원하는 방향의 청원을 제 위치에서 들어줘야 하지만, 실제로는 현실적으로나 교회적으로 하느님의 뜻, 교회의 입장과 다르면 ‘이것을 지금처럼 하면 안됩니다’ 고 설명할 수밖에 없고요. 또 아무리 설명을 하여도 이해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빚어지는 갈등 또한, 무시할 수 없는데요. 오늘 여러분이 들으신 독서와 복음이 그러합니다.
독서는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인들의 불평을 듣습니다. 이에 하느님이 명하신대로 바위에서 물이 솟게 해주시지만 정작 모세와 아론은 하느님께 혼이 납니다. “너희는 나를 믿지 않아 이스라엘 자손들이 보는 앞에서 나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이 공동체에게 주는 땅으로 그들을 데리고 가지 못할 것이다.” 정말로 민수기 20, 22이하에는 아론이 죽는 장면이 나오고요. 모세도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인간적으로 억울할 수 있겠지만 그 위치에서 못한 것은 현실입니다. 이어 복음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의 고백에 칭찬하시지만 곧이어 베드로의 반박에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독서는 약속된 곳에 가지 못해서, 복음은 아끼는 제자를 혼내야만 하는 그 심정이, 참으로 가슴 아프게 다가옵니다. 여기에 기념일을 맞이한 도미니코 성인을 봅니다. 사람들을 설교로 이끌고, 회개토록 힘쓰셨다지만 항상 성공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1208년 교황대사 베드로 카스텔란이 피살되자, 이들을 상대하려고 십자군과 더불어 7년을 이단자들을 향해 설교하셨지만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도 그랬듯이 오늘날의 사목자들은 고독합니다. 일반인들처럼 풀 수 없고요. 어디에다 쉽게 얘길 꺼내기도 어렵습니다. 바로 와전되어 스캔들이 나기도 하기 때문이지요. 예수님, 모세, 아론, 그리고 도미니코 성인은 그런 삶을 사셨구요. 저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역설적으로 들리시겠지만 앞으로도 이런 분들이 계속 나와야 합니다. 사회에서 빛을 보지 못하고, 억울하고, 알아주지 않아 비참한 분들이 사회 곳곳에서 계속 나와야 합니다. 그 작은 물방울 같은 그분들의 애씀이, 다른 사람들을 구해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그런 분들이 힘을 잃지 않도록 여러분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