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21주일 미사. 이사야 66,18-21; 히브 12,5-7.11-13; 루카 13,22-30.
성가책 55번에 있는 ‘착하신 목자 우리 주님~’ 으로 시작하는 성가가 있지요. 이것은 요한복음 10장 14절에서 비롯됩니다. “나는 착한 목자다.” 원어로는 ego sum pastor bonus. 영어로는 i am the good shepherd. 라틴어는 bonus, 영어로는 good 에 해당하는 ‘착함’ 이란 과연 어떤 뜻일까요? 성격이 온순한 건가요? 말 잘 듣는 건가요? 아니면 생글생글 잘 웃는 것을 뜻할까요? 만약 이런 것이 착한 거라면, 여러분은 서비스업에서 제공할 법한 착함을 알아들은 셈입니다. 우리가 가질 착함은 이런 성질이 아닙니다. 먼저 예수님이 착한 목자라고 하셨으니, 목자가 갖출 착함의 기준을 보겠습니다. 목자는 양을 돌봐야 하기에 양의 특성을 알아야 합니다. 양은 스스로 길을 찾지 못합니다. 양은 스스로 방어 능력이 없습니다. 양은 무리를 지어 다닙니다. 약하기에, 자립하지 못하기에 그들을 돌봐야 하고요. 돈을 받고 일하는 삯꾼 목자와 달리, 자기 양이므로 양을 위해 목숨을 바칩니다. 즉 여기서 말하는 착한 목자란, 자기를 관리하고, 맡은 바 임무를 다하며, 책임을 지키려 목숨까지 내놓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건데요. 성인들도 목숨을 내어놓으셨듯이요. 그러면 예수님을 따르는 여러분도 그러하신지요? 여러분이 맡으신 것에 책임을 다하며, 목숨을 내어놓을 만한 착함을 갖고 계시는지요. 이것이 가능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먼저 복음에서 말하는 ‘좁은 문’ 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문이 좁으니 통과하려면 훈련이 필요할 것입니다. 물론 1독서의 “나는 모든 민족들과 언어가 다른 모든 사람을 모으러 오리니..”처럼 하느님은 모두를 부르실 것입니다. 하지만 2독서의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이를 훈육하시고, 아들로 인정하시는 모든 이를 채찍질 하신다.” 처럼 훈련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로인해 “나중에는 그것으로 훈련된 이들에게 평화와 의로움의 열매를 가져다줍니다.” 처럼 분명 무언가를 얻을 것입니다. “주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는 말씀처럼 그 과정을 거친다면 그 약속된 바를 주실 것입니다. 다만 이를 견디지 못한다면 “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가 되겠지요.
여긴 편안함을 제공하긴 하지만, 그것이 이곳의 전부를 설명하진 않습니다. 자만, 자족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이곳은 세상을 잘 살아내기 위한 ‘수련장’ 입니다. 수련을 통해 내가 뭘 해야 할 지를 파악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피하지 말고 맞서십시오. 예를 들자면, 교회 내에서 단체 활동을 하면서 대표, 임원이 되는 이유는, 책임감을 갖는 자세를 연습시키는 수련의 시간입니다. 그렇다면 작은 것 하나라도 정성껏 임해야겠지요. 그런 시간되시길 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