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31주간 화요일

2019. 11. 5. 오후 7:5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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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31주간 화요일

  많은 분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들으며 느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이러쿵저러쿵 말을 많이 하지만, 정작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고요. 그러다보니 신앙생활에 대해서는 기도를 많이 해야한다, 미사를 잘 나와야 한다 모범답안을 말하지만 정작 자신은 왜 기도를 꺼려하고, 미사에는 왜 나와야 하는 지 에 대해서는 자기만의 대답은 하지 못하시던데요. 어쩌면 우린 그동안 정답을 말하기를 강요받고 자랐기에 그런 모양입니다. 해야 할 것은 알지만, 왜 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는 모르는..’ 그러다보니 자신의 위급한 상황에 닥치거나 급박한 판단이 요구될 때, 딱 굳어버립니다. 내가 해야 할 것보다, 하고 싶은 것을 먼저 선택해버리는 문제 에 빠져버리는데요. 일이 이렇게 돌아가다 보면 나는 내 인생을 살면서도 제대로 된 분별을 못하게 됩니다. 자기 자신을 잘 알아야 결국 나의 인생을 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의 사람들이 그러합니다. ‘하늘나라의 초대이야기입니다. 초대받은 이들은 이제 준비가 되었으니 오십시오 라는 말을 듣습니다. 약속은 서로가 다 하였지만 정확한 기한은 알 수 없는 약속입니다. 마치 죽음같은 것이죠. 사람이 죽는다는 사실은 다 알지만, 언제인지는 모르는..’ 하지만 사람들은 여기에 다들 못간다는 이유를 댑니다. 우리가 사실 그렇지요. ‘! 해보겠습니다.’ 가 아니라 빠져나갈 궁리를 찾습니다. 이른바 순명보다는 자기 자신을 더 내세웁니다. 자기를 내세우면 정말 자신이 잘하는 것, 해야할 것을 하기보다는 자신이 원하고 꿈꾸는 이상향에 머물기 쉽습니다. 잘하지는 못하지만 해보고 싶은 것, 감당할 수는 없지만 좋아보이는 것 에 목을 맵니다. 그 마음을 이해할 수는 있어도 동의하긴 어렵습니다. 그 선택이 본인을 살릴 수 만은 없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한 번 해보았다라는 수준으로 끝나기 보통이지요. 그래서 독서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저마다 하느님께서 베푸신 은총에 따라 서로 다른 은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예언하는 이, 봉사하는 이, 가르치는 이의 예를 들지요. 잘하는 것, 은총에 선물을 받은 것으로 살라고 하십니다. 그게 내가 잘하는 것이고, 재능이고, 특기이고, 삶의 밑천이 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그것을 하지 않고 거부하면 복음 마지막처럼 처음에 초대를 받았던 그 사람들 가운데에서는 아무도 내 잔치 음식을 맛보지 못할 것이다.”처럼 내쳐지는 취급을 당할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린 나 자신을 알아야 하지요. 나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사용설명서를 파악하면서 다독이며 가야 합니다. 자기를 드세우다가 말년이 망해버린 사람을 수 없이 봐왔습니다. 그런 이들의 실패사례는 우리에게 반면교사(反面敎師)의 모습이지요. 우리 자신을 잘 돌봐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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